나는 그런 그녀가 참 싫었다

단편소설

by 리을

나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같이 있으면 조금은 즐거워지는 사람. 잠깐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상하게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사람들을 조금씩 슬프게 만드는 주문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지쳤고, 생각보다 자주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슬픔 옆에 잠깐이라도 서 있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웃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순진한 계산이었다.

* * *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별다른 계산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저 약간의 온기만 담겼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내밀면 나에게 물었다.

"혹시 저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왜 저에게 손을 내미나요?"

사람들은 매번 이해가 가지 않는 질문을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도움이 필요해 보여서요."

그때의 나는 정말로 이렇게 믿었다.

* *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외로웠다.


먼저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그 손을 잡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넘어질 때, 그들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꽤 오래 걸려서 배웠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 것. 그러면 적어도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기대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줄어든다.

합리적인 거래였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성실하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그날도 어김없이 술자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몇 번은 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또 하고 있었고, 이야기는 대체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웃음은 채워졌는데 사실 그다지 특별하지 않는 종류의 웃음들이었다. 맥주가 만들어낸 관대함 같은 것.

나는 그런 자리를 찾으면서도 필요 없는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별 의미 없는 시간 속에서 외로움을 잊는다.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보다 그냥 옆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밤이었다.


나는 결국 이런 모임에 나오는 나 자신이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 자신이 더 우스웠다.

* * *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취했고, 누군가는 갑자기 약속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취한 사람의 짐을 챙기고, 누군가의 전화기를 찾아주고, 먼저 가라는 말에 괜찮다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테이블 위의 빈 잔들을 정리하는 사람.

그녀는 꼭 내 앞에서만 긴장을 풀고 피곤한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않는 종류의 한숨이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바보 같은 사람.

저렇게 살다 보면 결국 다친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주었다. 지하철이 끊긴지도 모르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된다는 그녀를 매번 택시에 태워 보냈다.

별일 아닌 호의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그 이후로 우리는 가끔 같은 모임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맞추고, 취한 사람을 챙기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쓸데없는 짓이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결국 저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칠 거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상처받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매번 별일 아닌 호의를 베풀고 싶었다.

나는 매번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나는 그걸 그냥 불쌍한 사람에게 보이는 선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런 바보같은 사람 곁에 나같은 사람 한명쯤은 있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 * *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별 의미없는 모임 속에서 외로움을 잊고 있었다.

그날은 조금 일찍 밖에 나와 어딘가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약간의 온기가 섞여 있었다. 겨울이 조금 느슨해진 틈새 같은 것.

그 바람을 잠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서 바보처럼 웃고, 취한 사람을 챙기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


여전히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게 살면 결국 다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불편할 정도로 익숙했다. 오래전에 지워버렸다고 생각한 예전의 내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녀를 생각하다 보니 입에서 툭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다.


"봄"


그때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봄이 오나 봐요."

그녀는 코트를 여미며 웃었다. 피곤해보였다.

"조금 걸을까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조금만 걸으면 술이 깰 것 같아요."

나는 그때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셈치고 잠깐 같이 걸어주기로 했다.

그 정도 호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상처받을 테니까.

* * *

우리는 걸었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었다. 이따금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었다.

가로등 아래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불편하지 않은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걷다가 그녀가 물었다.


"상처 받았나 봐요?"

나는 당황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쓸데없는 말을 했다.

"억지로 차가울 필요 없어요."

잠깐 멈추더니 덧붙였다.

"다 보여요. 원래 따뜻한 사람이잖아요."

나는 불쾌했다.

정확히는, 들킨 것 같아서 불쾌했다.

도망칠 수 없어서 불쾌했다.

결국 그녀에게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을 했다.


"먼저 손 내밀어봐야 남는 거 없어요. 쓸데없는 짓입니다."


* * *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망설임 없는 손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다. 그 눈빛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저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저에게 손을 내미나요?"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알잖아요."

그녀는 웃었다.

* * *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고, 차갑고,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손이 눈 앞에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계절이

사람 얼굴을 하고

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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