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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Mar 03. 2020

누군가를 이해하게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어려운 이해에 대하여


 나에겐 일찍 혼자가 된 고모가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같이 살았다.어느날 교통사고가 났고 사고 로 인해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고모는 오른쪽 팔을 거의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사고 당시 사촌 동생 은 끔찍한 사고에서 기적처럼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사고 난 차량을 보는데 운전석 옆자리 상단에 손잡이가 뜯어져 있었다. 사고 현장을 수습하러 온 직원들이 뜯어져 있는 손잡이를 보고 놀랐다.


“이게 어떻게 뜯어졌지?”


 성인 남자 4명이 있는 힘껏 잡아당겨도 뜯어지지 않는 손잡이가 50kg도 되지 않았던 고모의 한 손의 힘으로 뜯겨 나갔다. 3살짜리 아들을 왼손으로 감싼 채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버틴 덕에 동생은 생 채기 하나 없었다. 동생은 멀쩡했지만, 대신 고모의 오른팔은 절반 이상 들리지 않을 만큼 만신창이가 됐다.


 어릴 때는 같이 지내는 게 참 힘들었다. 매일 싸우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내게 짜증내는 고모가 원망스러웠다. 고모는 나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그러다 어느 날 고모가 지내는 방에 들어갔는데, 비좁은 방안에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고모의 삶 이 보였다.


 빼곡히 쌓인 옷가지와 화장품들, 차곡차 곡 접어둔 신문들과 삐뚤 빼뚤 써놓은 메모지들. 매일 출근하기 전 입을 옷들을 몸에 대보고 나에게 어 떤 게 잘 어울리냐고 물어보며 귀찮게 했던 고모의 달력에는 ‘그 블라우스는 베이지색 바지와 잘 어울린다.’ 같이 내가 건성으로 대답했던 이야기들과 회 사의 일정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한참을 불 꺼진 방에서 엉엉 울었다.


‘고모도 참 많이 힘들었구나.’


 고모는 어른이니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나는 어리니까 어리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게 싫었고 트집 잡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감정적으로 화부터 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고모를 미워했다. 그런데 고모의 방에서 고모의 삶을 보게 된 그날 부터 그동안의 내가 참 어렸다는 걸 깨달았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건, 정말 무 섭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게 되니까. 그날부터 나는 고모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졌다. 신경 써야 할 조카가 아닌 든든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 주고 싶어졌다.참 많이 미워했는데, 그 순간부터 세상 누구보다 고모를 사랑하게 됐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아직도 누군가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 지 잘 모른다. 상대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되고, 상대 도 노력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내가 나만 생각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마법이 일어나듯 모든 어두운 감정들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어쩌면 이해 는 이렇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당신도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는 늘 사랑을 데려오니까.


<시작할 용기가 없는 당신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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