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그럴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적절한 환경이 주어진다면" (under the right circumstances)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그는 김정은과 만나게 된다면 본인에게 "영광"일 것이라고 했다. 국내 보수파에게는 전형적인 종북적인 발언이다. 이 종북적인 발언이 미국 45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If it would be appropriate for me to meet with him, I would absolutely, I would be honored to do it." : 김정은을 만나도 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만나야죠. 영광스럽게 만날 겁니다. (블룸버그와의 5월 1일 인터뷰) *관련 CNN기사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간접적인 호의를 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공화당 경선 때도 그는 북한의 젊은 리더에게 은근한 호감을 표시했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1945년생인 트럼프는, 아들뻘인 김정은에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자신과 비슷한 인생경로를 겪고 있는 김정은에게, 모종의 동질감과 연민, 혹은 동정심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우선 트럼프가 작년 1월 공화당 경선 당시 했던 김정은 관련 발언을 살펴보자.
"How many young guys -- he was like 26 or 25 when his father died -- take over these tough generals, and all of a sudden ... he goes in, he takes over, and he’s the boss. "It's incredible. He wiped out the uncle, he wiped out this one, that one. I mean this guy doesn't play games. And we can't play games with him." : 김정은은 아빠가 사망했을 때 고작 25,26살 밖에 안 되었는데, 그 나이에 노련한 군간부들을 제압하고 한 순간에 보스가 됐어요. 얼마나 많은 젊은 이들이 그런 것을 해낼 수 있을까요?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삼촌 (장성택)도 제거하고 다른 간부들도 제거합니다. 김정은은 장난을 치지 않아요. 우린 그를 상대로 진지해야 합니다.
그리고선 이렇게 말한다.
"You gotta give him credit.
(ABC News)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한다는 말이다.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뱀처럼 노련한 군 간부들을 일순간에 숙청하고,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군 간부들, 삼촌 장성택을 숙청하는 김정은의 통치행위를 트럼프는 높게 사고 있는 것이다.
대북 강경론자들은 삼촌 장성택의 처형을 '비도덕적', '비인권적'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므로 이런 극악무도 정권과는 핵포기 선언 전에는 어떤 협상도 불가하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김정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트럼프의 과거와 그의 캐릭터를 보면 그 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철저히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다. 27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뉴욕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아 지난 40년 동안 트럼프 제국 (Trump Empire)를 확장하고 지속시키는데 인생을 바쳤다. 그 과정 속에서 전임자 오마 대통령 등 진보주의적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철학도덕적인 정치원칙은 그에게 이상적인, 순진한 문구로 다가온다.
그는 힘에 의한 정치를 좇고, 힘에 의한 정치를 가능케하는 '권력'을 가장 중요한 통치수단으로 바라본다.
그 이유로 그는 공공연하게 푸틴 대통령을 사모하고 마약 청산을 명분으로 살인허가증을 온 국민에게 배포한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를 백악관에 초청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처음부터 힘에 의한 정치를 바라기 때문이다. 견제와 감시의 장치가 곳곳에 설치돼 있는 미국에선 가능하지 않지만 무소불위 권력을 바탕으로 정치를 펴는 이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 맥락에서 김정은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 그 맥락에서는 많은 이들이 극악무도한 짓이라고 보는 삼촌 장성택의 처형도 그의 눈엔 김정은으로선 마땅히 해야 할, 무척 "영리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예측하는 다른 이유는 둘 사이에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아버지에게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 그의 나이 27세였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김정은의 나이와 같다. (북한 매체에선 김정은이 82년 생이라고 주장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이 태어난 해(1912/1942)와 숫자를 맞추기 위한 주장이라는 것이 공통된 분석. 그의 실제 생년은 84년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나이에 터프하기로 소문난 뉴욕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을 회유, 설득, 협박, 포기시키며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켜왔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과 아버지가 소유한 38개의 건물에 입주해 있던 소수인종들을 재건축을 위해 강제 퇴거시켜 뉴욕연방 검찰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1968년, 그의 나이 23살 때의 일이다. (관련기사)
트럼프는 자신과 같은 나이에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약육강식의 뉴욕 부동산 사업의 일인자가 되었듯, 김정은 또한 본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권력을 물려받아 북한이라는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고 말이다.
시리아를 향한 전격적인 미사일 공격과 한반도에 집결한 미 해상 함대는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 때 즐겨했던 블러핑의 맥락으로 보인다. 긴장도를 점점 높여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상대로부터 얻으려는 계산인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 또한 똑같은 계산하에 블러핑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잇따른 미사일 발사, 5차까지 온 핵실험.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6차 핵실험 등, 김정은의 블러핑을 바라보며, "오... 이 녀석 봐라.. 제법인데?"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개인적 호감을 바탕으로 전격적인 북미회담, 더 나아가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북미 회당이 성사된다면- 북의 핵포기 전에는 어떤 협상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5월 9일 선출될 새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