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5
(illustrator cs6)
빨간 구두에 발목을 벗어두었다
딱, 딱, 따그닥, 말만 한 소리가 멀어져가는데
벌써 발가락이 움트기 시작했으므로
봄자리나 살펴야겠다
아주 잠깐 네게 맡겨두었던 발목인데, 그렇게도 가벼이 가져가 버리면 발버둥 치며 끌어안아야 할지/걷는 걸 포기해 버려야 할지/망연히 울기만 해야 할지/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 대한 세뇌', 혹은 '너에게의 허세'.
"가지치기한 듯 반듯하게 썰려나간 그 자리엔 이미 새 살이, 새 발가락이, 돋고 있으니 난 새 봄을 맞을 준비나 하겠다."
빨간 구두는 얼마나 원했건, 얼마나 즐거웠건, 그 모든 것이 '의지 밖'이 되는 순간 어디까지 괴로워질 수 있는가를, 참, 친절히 알려주는 동화다.
발이 자라 혼자 힘으로 다시 땅을 단단히 딛고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난 '너'와 '네가 가져간 내 발목'을 그릴 테다. 아마 맨발로 걷는 게 불만스러워질 때쯤엔 또 다른 구두를 그릴지도 모를 일이지. 또다시 걸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단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