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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eul Kim Apr 19. 2016

에티오피아에서의 첫 고민

NGO에서 일하는데, 이렇게 누리면서 살아도 되나요?

매일 아침 아니 새벽, 이상한 기도소리에 눈을 뜬다. 발원지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하루에도 수차례, 확성기로 온 마을에 떠들썩하게 기도를 올린다. 약간 이슬람스러운 이 기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먼 타국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침에 세수를 하며 코를 푼다. 분명 어제 밤에 열심히 코를 풀고 잤건만 끊임없이 꾸정 콧물이 나온다. 3월은 에티오피아 건기의 절정. 땅이 푸석한 탓에 걸어 다니는 족족 모랫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차로 이동할 때면 시커먼 매연이 콧구멍을 헤집어댄다. 창문을 닫아도 창 사이로 매연이 새어 온다. 차라리 열고 달리는 게 낫다. 덕분에 코는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400m의 고지대라 그런지 조금만 과하게 움직여도 숨이 차곤 한다. 4층 계단만 올라가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운동부족인 탓일까 아니면 고지대인 탓일까. 거기다 같이 온 사람들 모두 느끼는 건데, 방귀가 무지하게 잘 나온다. 계속 뿡뿡거리고 다닌다. 생리현상이 활발한 탓일까 고지대인 탓일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고지대라 좋은 건 벌레가 비교적 많지 않다는 것과(벼룩과 빈대의 천국이긴 하지만..) 한국의 봄날 같은 좋은 날씨! 하늘에 올라온 듯 구름도 정말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햇볕이 심하게 쎄 얼굴이 금세 탄다는 건 함정이지만.

 

하늘과 가까운 땅, 아디스아바바


곳 아디스아바바에서 내 삶의 터전은 동쪽에 위치한 CMC지역. 나름 신도시인지라 주변에 마트도 많고, 으리으리한 집들도 많다. 파견 기간 동안 대략 7~10명의 한인 동거인과 함께 살았기에 우리 집도 그 으리으리한 집 중 하나였다. 4층짜리에 작은 마당까지 딸린, 월세가 백만 원이나 되는 그런 집 말이다. 인터넷도 비교적 잘 되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물도 잘 나온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 마실 물이 있고 먹을 음식들이 있는, 그런 좋은 환경. 게다가 클리너와 가드까지 있다!!!

약 1년 반 동안 살았던 숙소. 바로 옆집이 회사다.


에티오피아에 오기 전엔 이런 좋은 환경일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움막에서 사는 걸 상상하기도 하고,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울 거니 빗물을 정수할 방법을 궁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게 괜한 걱정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상위 1%까진 아니지만 상위 10% 안에는 드는 듯했다.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그런 환경에서 산다. 그게 감사하기도 했지만, 퀘스천 마크이기도 했다.


좋은 일하겠다고 왔는데 이렇게 누리면서 살아도 되나?


모순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나는 NGO 간사이지 않은가! 걸인과 고아, 가난한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호의호식한다니. 이래도 되나? 하지만 그런 한편으론 냄새나는 담요를 새 이불로 바꿔주니 신이 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땐 누구보다 앞장서는 나란 사람.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건지. 놀고 싶은 건지 누리고 싶은 건지 나누고 싶은 건지 정말 뭔지. 뭐 얼마 나눌 건 없지만, 적어도 누리러 온 건 아니었는데... 이건 정말이지  에티오피아에서 겪은 나의 첫 고민이었다.

아디스아바바 북부에 위치한 빈민촌

NGO에겐 보다 엄격한 수준의 도덕적/사회적 기준이 주어진다. 일종의 기대감일 거라 생각한다. '콩 한쪽도 나눠먹겠다는 사람들이니, 너희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니?'라는. 그래서인지 많은 NGO, 특히 국제개발 NGO에는 고스펙 능력자들이 넘치지만 저임금이 만연하다. NGO에서 일하는데 돈도 많이 벌고 사치를 부린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건 누구의 생각이기 전에, NGO에서의 커리어를 꿈꿨던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접 NGO에서 일하며 느낀 건, 어디서 일하든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였다. 나 있고 너 있지, 너 있고 나있지 않다(물론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가 아무리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해도, 내 삶이 힘들거나 궁핍하다면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위하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게다가 쏟아지는 일 속에서 내 뜻대로 되는 건 없고, 여기저기 갈등에다 이방인 스트레스까지 받는데 집에 돌아갔을 때의 안락함마저 없다면..? 처음엔 모순처럼 느껴졌던 환경이, 나중엔 '이거라도 괜찮아서 다행이다'로 바뀌어갔다. 덕분에 내 고민도 나름 해결점을 찾았고.

살아본 방 중 가장 안락했던 방 (4달 즈음밖에 못지내 아쉬웠던..)


처음엔 가벼운 얘기를 쓰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계속 써 내려가다 보니 '그러니 내 좋은 환경을 이해해주렴'이라고 쓴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랬다. 그게 내가 느꼈던 모순이었고 내가 내린 답이었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있다면, 내 이야기에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하며 그냥 고개 한번 끄덕여줬음 싶다.


첨언을 하자면, 에티오피아에서 international NGO는 고소득 직장으로 여겨진다. 좋은 업무환경과 높은 임금으로 인기가 만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계 기업을 보듯 말이다. 때문에 남다른 사명감으로 ngo를 찾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여러 조건을 보고 ngo에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같은 NGO인데 어딘가에선 저소득 직장이고, 또 어디에선 고소득 직장일 수 있다니.. 참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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