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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Nov 08. 2021

나의 아저씨

비 오는 날의 잔상

내 삶에 열 번도 채 되지 않게 뵌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잘 모르지만 그분의 아들과 나는 동갑내기로 무척 가깝게 지냈다.

나보다 나흘 먼저 태어난 그는 족보상 아저씨였기에 어릴 적 억울해하면서 ‘아저씨!’라 불렀다. 오빠가 없는 나는 오빠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래도 아저씨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차츰 동갑내기 아저씨는 진짜 ‘나의 아저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기때는 역시 동갑내기인 엄마들의 등에 업혀 자주 만났다 하고, 사춘기 시절은 서로 잘 만나지 못하다가 대학에 가서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를 만나러 학교 앞에 갔을 때는 무언가 서먹하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그렇게 나에게 할머니이신 아저씨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서로 긴 세월을 친구같이 때로는 자매와 같이 지내셨고, 같은 동네에 오랜 이웃으로 살기도 했다.


아저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학원가의 스타강사가 되었다.

사실 내가 상상한 아저씨의 직업은 그런 게 아니었다. 기자나 교수? 아니면 학자가 잘 맞을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저씨는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고, 대치동 학원가를 주름잡았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한참 후에 아저씨도 결혼했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엄마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아마도 막 마흔이 되었을 때인 거 같다.

아저씨가 암에 거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투병 중이라고.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언제였던가 더듬어 보니 5년도 넘은 거 같았다. 그렇게 소식을 접하고 또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사느라(아저씨는 열심히 투병을 하였고, 나는 열심히 엄마와 아내를 했다)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아저씨를 만난 것은 내가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다릴 때였다.


어느 비오는 , 올림픽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가는데 문득 아저씨가 보고 싶어 졌다.

차도 밀리고 비는 추적거리는데,  전화벨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ㅇㅇ아! 어디니? 지금 만나자!”


그렇게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6여 년간 나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치료했다.

아저씨는 투병을 하며 알아낸 용하다는 한의원, 발마사지 등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는 생의 바닥을 치고 지하로 땅굴까지 파는 중이었는데 아저씨는 본인의 병이 위중함에도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아저씨는 진짜 ‘나의 아저씨’가 되었다.

동갑내기이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아저씨’이기에 나보다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친구와 맛난 점심을 먹던 3월 어느 날, 급하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의 아저씨는 너무 맑게 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저 깊은 잠이 든 것처럼.

“아저씨, 정말 고마워… 아저씨가 나의 아저씨여서 정말 좋았어… 잘 가…. 또 만나.”

투병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아저씨는 정말 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되시는 아저씨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가을비가 추적 인다.

바람에 은행 잎은 흐드러지게 날리고 떠난 사람이 있던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 빈자리를 지키느라 애닯다.

어제는 엄마가 할머니를 만나고 오셨다 한다. 아들이 먼저 떠나고 남편이 이제 그 아들을 만나러 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라 했던가.. 가슴을 후비고 메어오는 명치를 아무리 쥐어뜯어도 삶의 질긴 광기는 그리움이라던가 슬픔이라던가 하는 말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흐드러지게 찬란한 가을나무들은 비를 홀딱 맞아가며 간절히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 했던 그날처럼 말없이 아름답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글을 나르다 보니 아저씨가 참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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