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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Sep 27. 2021

글 하나라도 끄적일 수 있는 그 덕분에

갑작스러운 입원과 수술 그리고 파란 공포 2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식사를 마치고 나면 환자들이 링거가 달린 봉을 밀면서 병동을 뱅글뱅글 돈다.

식사 후 나름 운동을 하려는 것인데 몇 바퀴 돌다 보면 계속하여 마주치게 된다. 머리를 수술하여 헬멧을 쓴 사람, 나보다 많은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 식사를 못하여 주사로 맞는 사람(꼭 식사를 할 수 있는 환자들과 같은 시간대에 나온다) 등 모두가 집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가지고 돌고 또 돈다.

그나마 병실 밖을 나와 이렇게 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언제나 굳게 닫혀 있는, 얼굴조차 모르는 환자들이 더 많다.


3박4일의 입원기간 동안 병동을 자꾸만 돌다 보니 환자의 나이와 성별을 알게 되었다. ‘F 65 김**, M 34 박** ‘라고 적힌 환자정보가 병실의 문패와 같은 역할을 하고, 10대에서 90대까지 신기하게도 남녀노소가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밖을 나오지 못하는 병실 안의 사정이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고, “두 달째예요!”라며 서로를 위로하는 보호자들의 대화도 듣게 되었다. ‘F 16 이**’ 소녀는 병문 앞에 ‘감염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바깥세상의 아우성은 사치에 불과한 파란 공포와 하얀 침묵이 짙게 깔린 까만 우주와 같은 세상이다.


병원에서 바라본 야경

도심 한가운데 있는 병원이다 보니 전망이 참 좋았다. 환자들은 병동을 돌다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도시에서 밀려난 것일까.

과연 나는 저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잊혀지고 있는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무것도 아닌 경계에서 단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창문을 조금만 열면 도시의 열띤 소음과 소란스러운 공기가 바로 들어오는데 저곳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득하다.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병은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도둑처럼 평범한 일상을 빼앗아 간다.

배신감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강제 여행을 당하고 감금상태에 놓이게 된다. 소독약 냄새와 함께 낮도 밤도 아닌 그 어느 중간 지점에 갇힌 느낌이 들면서, 공상과 유머를 잃어가고 오롯이 나의 몸뚱이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깨닫게 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고독한 싸움이라는 것을







글 하나라도 끄적일 수 있는 그 덕분에


입원을 하면서부터 수술 당일 아침까지 글을 썼다.

딸은 평상시 열심히 쓰지도 않으면서 짐도 많은데 병원까지 노트북을 가지고 오느냐며 나를 구박했다. 사실이다. 평소에는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수술을 한다니까 무슨 ‘작품 하나라도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강박이 생겼고, ‘앞으로 글을 쓰지 못하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을 했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삶이 위험한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어떠한 일이 생길 수 있다’, ’ 생길지도 모른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에 있다.


나는 어쩜 불안과 공포로 위축된 마음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해소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무기력과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가상한 노력이었다.

무사히 글을 마치고 수술방에 끌려 내려가는 순간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글 하나라도 끄적일 수 있는 그 덕분에 질척이며 온 몸을 휘감는 삶의 질긴 끈으로부터,  천박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조금은 사람답게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메인 사진 painting by Henri Matisse(앙리 마티스)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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