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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Sep 29. 2021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어쩌다 엄마

엄마들은 정말 열심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모든 세팅이 끝난 준비된 엄마들이었다.

거기에 비해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공상도 여전히 많이 하고 삶은 여전히 혼란스러우며 이미 정해져 버린 울타리가 낯설고 버겁기만 한 어설픈 엄마였다.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학교에 가게 되었다. 엄마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졌고 ‘나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하지 못하나?’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의 방황 때문에 너무도 중대한 <아이 키우기> 더 나아가 <좋은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는 사실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자’는 모든 부모의 염원으로 그 ‘훌륭한 사람’이 정확히 무엇인지 부모로서 그 답을 제대로 알아내기도 전에 대학입시의 난장판에 선수 입장을 하게 되는 프로젝트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꼭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모든 행위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대학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어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첫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받아쓰기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아이의 점수에 의해 엄마와 아이는  기쁨과 실망을 하얀 종이 위에 빨강 색연필로 그려진 숫자에 의해 맛보게 되고 그것은  엄마의 점수이기도 하다.


 

이미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한글을 떼는 것은 물론, 영어와 수학도 2~3학년 수준으로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 들어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끔(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겠거니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엄마와 아이는 첫 사회 경험에서 커다란 좌절을 맛보게 된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하나의 과정을 이수하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또 엄마끼리의 정보도 매우 중요하다.

좋든 싫든 엄마들과 어울려야 고급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고 팀이라도 짜게 되면 같이 어울려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엄마들 중에는 왕초가 있게 마련이다.


왕초의 기준은 첫째, 우리 아이보다 큰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매우 공부를 잘해서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 두 번째, 그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아이가 다니는 학원과 선생님의 정보를 꿰고 있는 사람. 세 번째, 급변하는 입시정보를 누구보다 통달하고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첫째도 아이, 두 번째도 아이, 세 번째도 아이의 진로에 대하여 인생을 걸은 사람. 

모 대충 이러한 엄마는 삶의 자세부터 확연히 다르기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평범한 엄마들은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면서 죄책감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실제 그런 엄마와 함께 사는 운 좋은? 아이들은 정말로 공부를 잘하고 결국엔 목표로 삼은 대학에 덜컥!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은 나는 오롯이 아이에게만 몰입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3월에 첫 선을 보았다. 그 자리에는 엄마와 함께 였고 상대쪽은 두 명의 누나와 나왔다. 그리고 멀리 다른 테이블에는 눈에 띄지 않게 아빠가 우리를 관찰하고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지 않는 무슨 조선시대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1987년, 그때는 그랬다.


어른들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대학 3학년부터 선을 보러 다니는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서 졸업하기 전까지 선 따위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고, 졸업과 동시에 이야깃거리 하나 만들 요량으로 그 자리에 나갔다. 그리고 다음해 2월에 결혼을 했다. 첫 선을 본 남자와.

그리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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