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HBK Braunschweig)
<독일 미대생 인터뷰를 기획하며>
짧은 기간을 두고 자주 바뀌는 한국의 입시제도. 특히나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미술 계열 학생은 매번 달라지는 입시 방향을 쫓아가기 배로 바쁘다. 힘든 입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바라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매 학기 버겁기만 한 학비와 재료비는 학생들이 창작활동과 배움에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예술대학을 통폐합시키는 대학의 방침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간의 창의성을 다루는 예술 교육을 자본주의적 사고로만 입각해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과 정책은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학생들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단기간의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지켜봐 주며 창작과 예술 교육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독일.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미술 대학의 교육 덕분에, 독일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나아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독일이 현대 미술계에서 가지는 위상의 원천으로 독일의 미술 대학(Kunsthochschule, Kunst Akademie)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주목하며,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을 만나 독일의 미술대학에서 경험한 입학·교육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다. 또한,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의 미술 대학 입시 및 교육 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세 번째로 브라운슈바이크 미술 대학교(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Braunschweig)에서 비디오 아트(Film und Video art)를 전공 중인 김유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룬트강(Rundgang) 기간이라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올해 브라운슈바이크 룬트강(Rundgang) 보이콧(boycott) 사태와 독일 미술 대학에서의 경험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은 간략하게 재학 중인 학교와 전공에 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유진(이하 ,,김’’):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진행 중인 일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라운슈바이크 미술 대학을 다니고 있고, 순수 예술(Freie Kunst) 전공 안에서 비디오 아트(Film und Video art)를 주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8학기를 마쳤고, 졸업까지 2학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하기까지 지나온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미술을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셨는지?
김: 어릴 적에 저는 만화와 같이 사람을 중심으로 짜인 이야기와 그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만화, 영상과 관련된 특성화고에 진학했는데, 이를 위해서 중학교 때부터 입시 미술을 했어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매일 미술학원 특강을 다니면서 열심히 준비해서 학교에 들어갔는데, 정작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고, 수능을 마치고 바로 독일로 유학을 왔어요.
이: 고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경험하셨던 입시 미술은 대학 진학을 위한 것과는 다른가요?
김: 대학 진학을 위한 미술 학원에 가면 홍익대반 혹은 국민대반 등. 대학교 이름을 딴 입시 준비반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고등학교 입시도 똑같아요. 유명 특성화고 아니면 예고 진학을 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반을 구성해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런 반에서 입시 미술을 시작했어요.
이: 입시 미술을 경험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김: 우선, 저 같은 경우에 만화에 완전히 물려버리고 손을 놓아버린 게 그때의 영향인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그런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고 너무 좋은데, 문제는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렇게 만화를 더는 그리기 어려워졌고, 새로운 걸 시도해보자고 마음을 먹고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만화 말고 영상 디자인을 하려면 시각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걸 하겠다고 마음먹고서도 습관처럼 미술 학원을 찾았어요.
당시 입학사정관제가 한창 도입되었을 때였는데, 유명 미술 학원 설명회에 갔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설명회에서 한 강사가 ‘정직하게 벽화 그리기 등. 봉사나 특별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한 척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단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학 전략만 생각하고, 얼마나 전략적으로 꼼수를 써서 입학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더욱 충격인 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 학부모들 모두 강사의 그런 말과 모습을 너무 반기면서 ‘여기 대박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대학교에 들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국내 대학입시에 회의감을 품게 되었어요.
이: 앞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셨습니다.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많은데, 특별히 독일에서 공부하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 미술 유학을 결심했을 당시에는 상업 영상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쪽은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나 경제력 면에서 미국이 세계적으로 뛰어나다 보니까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걸 알아봤었는데, 경제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업적인 영상보다는 작가 중심적이고 예술적인 영상이 더 취향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이에 맞춰서 더 알아보다 보니 프랑스와 독일이 그런 분야로 유명하더라고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엄청 단순했어요. 독일어 교재를 사서 보니까 ‘내가 이 언어를 배워서 공부를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열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독일로 결정을 했는데, 이후에 알고 보니 경제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제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잘 맞더라고요. (웃음)
이: 독일로 오셔서 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은 마냥 쉽고 단순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은 어땠나요?
김: 독일 학교 진학을 결심한 이후에 곧바로 원어민과 회화 수업을 하면서 언어를 일찍 준비했어요. 그리고 독일에 와서도 어학원에 다니면서 1년 정도 어학 공부를 하고, 이듬해에 지금 다니고 있는 브라운슈바이크 미술 대학교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어요.
독일의 미술 대학교 입학 과정이 일반적으로는 마패(Mappe)를 제출하고, 실기시험을 보고 교수님과 인터뷰를 한 이후에 최종 합격 여부를 받는 순서인데, 저는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마패가 아닌 “Frühstart Kunst”(각주 1)라는 실기시험을 쳤어요. 자신이 그간 해온 작업물을 제출하는 것이 아닌 당일에 주어지는 주제에 관해서 작업하는 특별한 실기시험이에요. 학생들이 가지고 온 재료나 장비를 가지고 과제를 하는데, 당시 분위기가 너무 즐거웠어요. 엄숙하고 무거운 시험 분위기가 아니라, 헤드폰 끼고 음악 들으면서, 휘파람을 불어가면서 작업을 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통해서 이 학교가 나에게 재밌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후에 시험 합격 소식을 받으면 본격적인 실기시험을 치르게 돼요. 이 시험은 마패 제출 이후에 있는 실기시험이랑 형식이 거의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저는 마패 대신에 “Frühstart Kunst”라는 1차 실기시험을 친 거죠.
이: “Frühstart Kunst”라는 프로그램은 처음 들어봅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마패 과정 대신에 치른 시험이라고 하셨는데, 마패랑은 어떤 뚜렷한 차이가 있나요?
김: 저 같은 경우는 시험을 쳤을 때 당시 순수미술을 접한 지 얼마 안 되어 천천히 알아가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지원하는 과에 꼭 맞는 마패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오히려 순발력 있게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작업하는 게 더 익숙했는데, 그런 부분이 프로그램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마패를 통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이: 1차 실기시험 이후의 두 번째 실기시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 두 번째 실기시험은 앞선 시험보다는 훨씬 중압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그만큼 집중력 있게 할 수 있었고, 더욱 진지하게 작업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에 비례해서 작업도 잘 나왔었고요. 이 시험을 치면서 중간에 교수들과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지금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져요. 이에 학생은 작업을 하면서도 성실하게 잘 대답해야 해요.
이: 학교 입학 이후에 수업은 학년별로 혹은 학기별로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간략히 설명해주시자면?
김: 우선 1학년 때는 “Grundklasse”라고 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작업, 쓰고 싶은 재료를 마음껏 사용하며 작업을 하도록 해요. 그리고 이에 대해서 담당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피드백을 줘요. 이렇게 1년간의 수업이 끝나면, 그 해 룬트강(Rundgang)을 전후로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는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자신이 원하는 교수의 이름을 1 지망, 2 지망에 써서 제출해요. 그럼 지명된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표를 직접 와서 보고, 이후에 자신의 반(Klasse)에 합류 가능 여부를 알려줘요. 만약에 안타깝게도 1 지망, 2 지망 교수 모두 거절을 통보받는 애들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기도 해요.
이: 낙오하는 학생이 많이 있나요? 아니면 보통은 다 잘 받아들여지나요?
김: 한 해에 평균 5명 전후로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보통은 Grundklasse 교수들이 학생들을 1년간 지켜봐 오면서 ‘이 작업은 영상 교수를 찾아가야 한다’ 혹은 ‘회화 교수의 반에 가서 배워서 발전을 시키는 게 좋겠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면, 학생들은 이를 참고해서 희망 교수를 적어내기 때문에 대부분은 잘 받아들여져요.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친구들은 대게 본인 자신도 작품을 하는 게 즐거운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중에 절반은 학교를 그만두기도 하고, 나머지 절반은 9월까지 연장 기한을 받아서 재시험을 보기도 해요.
이: 1학년을 마치고는 본격적으로 주전공을 선택해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교수의 반에 들어간 이후에는 어떤 수업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김: 2학년으로 올라가서는 자신이 선택한 교수님의 반(Fachklasse)에서 주 전공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요. 한 학기 동안 자신의 작업을 하면서 교수님과 작업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은 반 학생들끼리 크리틱(critic)을 가지기도 하고, 교수를 포함한 모든 반 학생들이 작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독일 미대마다 있는 이 비평 수업에 대해 학교마다 저마다의 명칭이 있는데, 저희는 플래눔(Plenum)이라고 불러요. 개인적으로는 2, 3학년 때에는 담당 교수님이 바쁘셔서 피드백을 많이 못 받았어요. 독일 미대에서는 넉넉히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활용하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전 그게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언을 많이 듣고 싶었는데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플래눔(Plenum)을 좀 더 자주 가질 수 있는 반(Klasse)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만족하고 있어요.
이: 작업을 위한 공간은 어떻게 제공되는 건가요? 교수 아래의 반(Klasse)마다 제공되나요?
김: 저희 반은 아틀리에(atelier)가 총 4개인데 하나를 3~4명 정도가 나눠서 써요. 주로 영상 작업을 다루기 때문에 학생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노트북으로 작업할 수 있고, 또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촬영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모든 학생이 작업실을 쓰지는 않고, 주로 설치나 회화, 퍼포먼스를 병행하는 작업 스타일의 친구들이 사용해요.
이: 학생들이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작업실 이외에도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부분이 있나요?
김: 예전에는 학교에서 한 학기에 한 학생 당 200유로의 재료비를 지원해줬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와서는 학생 개인에게 주는 지원금은 없어지고, 반(Klasse) 단위의 지원금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영상 쪽 학생들의 경우는 그 돈을 장비 구매에 활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까 장비는 주로 학교에서 빌려서 사용하고, 촬영에 필요한 인건비나 필요한 소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에요.
이: 학교에서 작업을 위한 장비 대여는 잘 갖춰져 있는 편인가요?
김: 네. 메디어텍(Mediothek)이라고 작업과 전시에 필요한 모든 디지털 장비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어요. 그리고 IMF(Institut für Medienforschung)가 있는데, 여기는 촬영 스튜디오와 편집실이 있고, 이를 다루는 데 도움을 주시는 전문가도 있어요.
이: 작업을 위한 재료비 지원, 기계 장비 지원과 같은 물리적, 경제적 지원 이외에도 예술적 영감을 받을 기회도 자주 주어지나요?
김: 네. 반마다 “Exkursion”이라고 답사 겸 연구 여행을 갈 기회가 종종 있어요. 비엔날레와 도큐멘타 같은 예술 축제를 보러 가기도 하고 멀게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올해 봄에 저희 반은 미국에 다녀왔는데, 현지의 학교와 미술관을 답사하면서 전시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요.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Exkursion”은 학교에서 비용 일부를 지원해줘요.
이외에도 학생들끼리 전시를 할 기회도 많아요. 일례로 저희 반은 아틀리에 네 개 중에서 하나를 프로젝트 방(Projekt Raum)이라고 해서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희 반의 한 학생이 전시하겠다고 하면 그 친구가 다른 반에 있는 학생 한 명을 초대해서 콤비로 작업을 선보이는데, 저희 반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자 나름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어요. 다른 매체나 장르를 다루는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전시하는 게 참여하는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전시를 보는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접근 방법을 알려준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브라운슈바이크라는 도시가 예술 산업 분야에 인프라가 잘 가꾸어진 곳이 아니다 보니, 학교 이외의 전시 공간이 많이 없어요. 근처의 하노버(Hannover)로 전시하기 위해서 종종 가기도 하는데, 베를린(Berlin)이나 뒤셀도르프(Düsseldorf)처럼 예술을 위한 공간이 풍부한 곳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죠. 그래서 작업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낯선 사람들과 마주할 기회가 풍부하지 않은 부분은 조금 아쉽기도 해요.
이: 작업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는 환경이기에 작업을 정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룬트강(Rundgang)이 학생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고,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김: 학생들에게 룬트강은 작업을 보여 줄 좋은 기회의 장(場)이에요. 여름학기가 절반쯤에 다다를 때 교수님이 이번 룬트강은 어떻게 할지를 물어보시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준비를 시작해요. 매년 본인의 작업을 선보일 좋은 기회일 뿐만이 아니라, 학생이 직접 전시를 준비하고, 작업을 설치하고, 이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철수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룬트강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과정에서 작업 설치에 관한 지식도 풍부해지고,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도구나 재료의 범위도 넓어져서 졸업 후에 작가로 활동할 미래를 대비해 실질적인 도움을 줘요.
이: 올해 룬트강은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처럼 단순히 학생의 작업을 선보이는 무대만으로는 이해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룬트강을 보이콧(boycott)한다는 전단과 더불어 전시장이 비어있거나, 각 반의 작업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띕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김: 최근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학생에게 통보한 학칙과 이러한 학교의 태도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써 보이콧을 진행하고 있어요. 크게 다섯 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업실 출입시간을 통제하는 학교의 규칙이에요. 학교와 작업실에서 24시간 생활하고 활동하는 주체는 학교 관계자가 아닌 학생인데, 그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적인 결정이죠. 그래서 이번 전시를 거부함으로써 학교의 일방적인 규칙 제정과 소통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고 그 태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어요.
이: 룬트강을 물리기는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학생의 제각기 다른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고 하나로 모을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고요. 전시 거부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작업실 출입 시간이 가장 큰 주제인데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실감하는 학과와 달리 출입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비협조적이었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어요. 실제로 이를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격렬하게 토론도 벌어졌고요. 그렇지만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의견을 듣고, 견해 차이를 좁히며 조금씩 연합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곧 전체 학생 회의(Vollversammlung)를 열었어요. 보이콧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는 게 효과가 있을지까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룬트강을 거부하자’라고 실행 결정을 내린 거죠.
이: 룬트강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의견이 모인 건가요?
김: 네. 사실 수개월 동안 벽보나 스티커를 붙이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과 같은 소규모 행동이 있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어요. 결국,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는데,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분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각자 행동반경이 다른 과들이 연합하는 계기를 찾는 것도 무척 중요했어요. 결국 룬트강으로 의견이 모인 거죠. 학생들이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1년의 중요한 마무리 겸 축제지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감수를 하자고 동의를 했어요. 또 룬트강을 거부하는 과감한 행동을 통해서 언론에 노출되기도 더욱 수월한 점도 작용했어요.
이: 룬트강을 돌아다니다 보면 작업이 전시되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이는 각 반이나 학과마다 보이콧을 다르게 접근하는 건가요?
김: 전체 학생 회의에서 처음에 보이콧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그 개념을 빈 아틀리에의 상태(leer)로 생각했어요. 흰 천장, 흰 벽만을 놔두자고 했는데, 그 부분에는 이견이 많았어요. ‘우리는 그래도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꼭 비워놓지 않더라도 작업을 통해서도 창의적으로 의견 표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다른 의견을 가진 반도 많았죠. 그래서 총학생회에서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여, ‘각자의 개성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보이콧을 하자. 대신에 학생회에서 보이콧에 관한 내용이 적힌 전단이나 플래카드(placard)를 만들고 이를 전시장이나 학교 곳곳에 두고 볼 수 있게 하자.’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각자의 방식대로 보이콧을 하면서 반마다 개성도 잘 드러나고, 찾아준 관객들에게 이 사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니 모두가 만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학생들의 이런 움직임에 교수들의 반응은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김: 사실 처음에는 반마다 담당 교수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혼란의 연속이었어요. 이 가운데 각 반의 조교(Tutor)들이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의견을 열심히 조율하고 반대하는 교수들을 설득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한 덕에 나중에 교수 대다수가 학생들의 행동을 적극 지지해주었어요. 막판에 총학생회에서 보이콧 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결론이 난 뒤로는 반마다 학생과 교수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보이콧을 할 것인가 계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이: 이번 룬트강 보이콧 준비 과정에서 총 학생 회의에도 참석하시며 일련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셨는데, 느끼신 점이 있으시다면?
김: 같은 반 학생 중에 런던에 교환학생을 갔던 친구가 그 학교의 교직원을 이번 룬트강 보이콧에 초대했는데, 저희에게 ‘런던에서도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중간에 포기하거나 흐지부지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 이유는 갤러리스트나 주요 기관의 큐레이터 등. 런던 예술계의 중요 인사들도 전시에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이콧과 같은 대규모 행동이 결실을 보기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브라운슈바이크는 지리적으로, 구조적으로 예술 시장과 멀기 때문에 보이콧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동부 니더작센(Niedersachsen)의 한 복판에서 학생들이 적잖은 고립감을 경험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지리적 배경과 더불어 좋은 환경을 갖춘 작업실 덕분에 지금껏 학생들이 주관이 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던 것 같아요. 이번 보이콧을 계기로 부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그간 브라운슈바이크 미술 대학에서 공부를 해오면서 어떤 내용의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짧게나마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 전부터 즐겨 다뤘던 시각미술과 새로이 공부하게 된 순수미술의 관점을 합쳐서 작업하고 있어요. 주로 평면과 3차원적 영상을 사운드와 결합해서 작업하는데, 최근 작업은 아트페어나 유명 미술관에서부터 소형 전시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예술세계의 상징적인 건축을 단순화시켜서 빈티지 스타일의 그래픽을 결합해서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영상 설치 작업입니다.
이: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 내년 이맘 즈음 학교를 마치면 다른 나라 아니면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 후에야 비로소 예술로 어떻게 재미나게 살아갈 것인가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다음의 목표는 ‘경제적 독립’이에요. 스스로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작가로 지내고 싶어요.
이: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지어지기를 바랍니다.
김: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각주>
1. Frühstart Kunst에 관한 정보는 아래 링크 참고
http://www.hbk-bs.de/aktuell/fruehstart-kunst-2017/
추신) 인터뷰는 책 출판을 주요 목적으로하며, 브런치와 개인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원문을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