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로마 왔는데바티칸은 무조건 가야지. 인간적으로 바티칸 왔는데 박물관은 가야지. 아, 맞다 근데 여기 티켓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던데. 아 그리고 이렇게 하면 할인도 된다던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 신혼여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로마가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티켓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건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여유를 두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는, '세계적'이라는 단어의 위력을 곧 실감하게 됐다.
이곳에 왔으니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그 유명한 바티칸 미술관 입장권은 이미 애진작에 매진, 시간을 들여 아침 일찍 줄을 선다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없었다.
'에이, 안 되면 다음에 또 오지 뭐'라고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여길 언제 또 오겠냐'싶어 계속 조급했다. 기왕 온 김에 볼 건 다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또 남들 다 한다는 걸 하지 못하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더 좋은 곳, 더 멋진 곳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할수록 내 손은 분주해져 갔다. 아름다운 풍경 보다 스마트폰 속에 시선을 고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현지에서도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인터넷을 뒤지고, 블로그를 검색하고, 어디가 가장 싸고 좋은지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쏟아부었다. 검색만 조금 해보면 유럽 여행에 있어 팁과 정보는 넘쳐나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더 나은 옵션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오히려 나를 지치게 했고, 내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신혼여행이니까, 우리 신혼여행은 특별해야 하니까, 좀 더 효율적이고 완벽한 여행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점점 그런 생각들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조급해하고 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로마의 아름다운 거리를 거닐면서도 머릿속은 끊임없이 다음 목적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디음 행선지를 향해 떼르미니 역에 도착할 무렵 한 무리의 미국인 관광객들을 보게됐다. 그들은 기차표를 사기 위해 아주 긴 줄을 서있었다. 언제 표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면서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자기들끼리는 연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 미련해보이기도 했다. 여기가 바티칸같은 유명 관광지의 입장권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기차표는 지금이라도 당장 온라인으로 바로 예약할 수 있는데. 그럼 저렇게 줄 서고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데. 심지어 온라인 예약은 가격도 저렴하게 할 수 있는데. 구글이든 어디든 검색 한 번만 했다면 알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사실인데.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행은 원래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렇게 많이 웃고 서로 추억을 많이 쌓자고 하는거 아니었나.아주 효율적인 여행을 하면서 점점 피곤하고 지쳐가는게 아니라 그냥 많이 웃는게 여행의 목적 아니었나.
그때 깨달았다. '맞아. 이게 아니지'
그들은 비록 '내가 보기에' 비효율적인 여행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웃음이 끊이질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다. 누가 봐도 내 쪽이 아니라 그들 쪽이 더 즐거운 여행의 모습이었다. 그 여행객들을 본 후 부터 내 여행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만약 나의 배우자도 나처럼 조급했다면, 우리는 신혼여행 내내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스마트폰만 보며 검색과 예약에만 몰두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혼여행을 시작하며, 우리의 신혼여행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까지도 어때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하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중요한 약속을 했다
앞으로의 삶에서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 인생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각들을 놓치지 않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의 삶이 처음으로 합쳐지는 신혼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믿는다.
신혼여행은 나에게 단순한 여행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통해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효율보다 행복을 우선시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최고의 효율이 아닌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며,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 속도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이었다.
매 순간에 빠르게 도달하려는 조급함보다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과 소중한 순간들을 중시하며 살기로 다짐한다. 우리의 인생도 여행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기보다는 그 길을 즐기며 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신혼여행에서 배운 이 소중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의 모든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잊지 않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