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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님 Mar 20. 2023

결국 남는 건 피해자와 가해자일 뿐

법원을 가서 이혼서류를 다시 작성했다. 법원을 가는 날까지 도장을 찍지 않던 그를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미련한 나였다. 이혼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나에게 다시 용서를 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내 미련한 착각이었다. 이혼서류를 내고 확정기일을 받아온 뒤 숨 막히는 시간들이 또다시 시작되었고 불과 2주 전 나는 또다시 폭발했다. 상간녀와 관련 된 비슷한 어떤것을 본 뒤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절대 아니라고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고 만날일도 없다고 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듣기 싫은 몸무림을 치며 그 작은 공간에서 도망치며 귀를 막아댔다. 그다음 날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말했다. 한 바탕 분에 못 이겨 퍼부운 뒤 매달린 꼴이라니 내가 봐도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물론 퍼붓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구석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들 눈이 무서워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나의 마지막 기회까지 놓아버렸다. 내가 어제 퍼붓는 걸 보며 평생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또다시 도망이었고 회피였다. 본인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안겨 준건지 정말 반성하고 있지 않은 거로 나는 결론을 냈다.


그가 나에게 이외에도 외도가 아닌 말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때는 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나 없이 살수 없다는 그에 진심에 용서를 했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계속 상처로 남아 있었지만 그에게 더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왜냐 그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때처럼 나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계속 구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거라고. 고 살기로 했다면 나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거라고. 하지만 그 또한 내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이 정도의 내 분노도 감당하기 싫다는 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여자는 아이와 놀러 다니고 명품으로 치장한 자신의 사진을 프로필로 걸며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런 분노와 상처를 안고 나를 갉아먹고 살게 된 건지 너무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확정을 받고도 집 계약 때문에 한 달 넘게 함께 생활해야 하는데 이제 남이 된 그에게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내 사람이 아닌 사람. 그 일이 전까지 나에게 너무 과하다 할 정도로 잘했던 사람이 나에게 준 상처는 너무 컸고 그걸 없던 일로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단칼에 끊어낼 수 없는 마음이기에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고 허무하기만 하다. 왜 나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한 순간에 끊어졌을까.


외도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이라는 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함께 오는 것 같다. 그것이 자책이 되지 않기를 그 시간들이 오래가지 않도록 그리고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이 흘러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꺼려진다는 사람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 난 그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마음이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혼을 잘 한 다는 건 드라마에나 있는 이야기. 잘하는 이혼은 없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결국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가해자로 남는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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