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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가르타 Nov 25. 2016

그 후 11개월

나의 이별은 왜 이리 길고 유난스러운가?

헤어진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람과 내가 만났던 기간만큼 지나간 것이다.


그 간 나는 다른 사람들도 만났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만큼은 그 사람이 크게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그 만남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 주기도 했고 내가 차이기도 했던 그 짧은 만남들의 끝에 큰 타격을 받지도 않았다. 다시 1년 전 그 사람이 생각날 뿐이었다.


어떤 실연에도 둔해져 버린 나는 여전히 그 사람과의 이별에서 만큼은 둔하지 않다. 반면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금세도 잘 만나 반년 동안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람과 내가 공유했던 공간은 평면이 되었고 그 사람은 동떨어진 새로운 공간에 낯선 사람과 낯선 옷차림으로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너무 빠른 상황 적응력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과연 그 사람다워서 우습기도 했다. 어림잡아 4개월 만에 새 사람이 생기자마자 그의 사진을 공공연하게 걸어놓는 행동이 너무 그 사람답고 어리기에 실행할 수 있는 패기처럼 느껴졌다.


그 단순함에 내가 상처 입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단순하게 보이는 상황들을 직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노트 한 권 분량의 스토리로 부풀린 것은 나다.

이 것은 마치 죽은 날파리를 관찰대 위에 두고 이리 분석하고 저리 분석하며 그 곤충의 존엄성을 발견하고 신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한없이 하찮은 물질에 거창한 서사를 쓰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다.


그 사람이 재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동안 나는 과거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그 사람과 새 연인은 제 시간 안에 답안을 모두 작성하고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데 나는 타임 오버를 하도록 답안에 아무것도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뒤처진 느낌이다.


나는 불필요한 원망과 화해하기 위해 그 사람에 대한 고마운 기억을 떠올려 그 사람을 축복해주고자 하기도 했고, 그 사람의 단점만 떠올려 하나도 아쉽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과거로부터 가장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납득했다. 관계는 망쳐진 지 오래고, 나는 상황 종료가 되고 한참 후에도 아무 명분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내 하루를 온통 그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중에도 그 사람과 새 연인의 세상에는 내가 없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얼마나 불공평하며 의미 없는 고통인가?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받은 상처로 여전히 슬퍼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다. 살아있는 것도 다행인데 행복해줘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 사람은 나의 행복에는 관심조차 없다고 해도.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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