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버리다
모델들.
스튜디오 시간.
포토그래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일이지만, 원영은 신상 드레스 룩북 촬영을 위한 준비가 다 된 상태였는데 하루 전날 모든걸 전부 캔슬 해버렸다.
돈 때문은 아니었다. 당일 전에 취소를 하게되면 위약금 70퍼센트를 물어야하기 때문에 기왕지사 쓰기로 한 돈이라면 생돈을 날리는 대신 찍는 게 낳으니까. 그러니까 겨우 30프로라도 건져야겠다고 생각한거 아니라는거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돈 때문에 살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아니, 사실 돈 때문이었다. 아무리 싸게 찍는다 해도 삼백만원은 깨질테니까 차라리 그 돈 안쓰고 더 큰 걸 얻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상혁이 원영을 착한 소녀라고 여기거나 불쌍한 시한부 라거나 어찌됐건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문신같은 존재로. 아마도 힘들 때면 내 생각이 나겠지. 다른 어떤 여잘 만나도 날 잊지 못하겠지. 불멸의 존재 말이다.
모델매니져와의 조율이라던가 스튜디오 사장과의 관계 사이에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사람 이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거고 누구하나 때문에 뾰족하게 군다는 건 찌질이들이 같은거니까.
욕은 바가지로 먹을 걸 알면서도 원영은 묵묵히 홀로 한 손에 물 스프레이를 들고 드레스에 칙칙 뿌렸다.
"원영이 너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 썰어야지 왜 하다 그만두고그래??"
대표님이 의아해한다.
"사장님이 하도 구박하니까 애가 주눅이 들어서 그러는거잖아요~~"
원장님이 엄하게 타박을 한다.
원영은 사실 예전 남자친구 생각이 나서 그랬다. 십년 넘게 만나고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고 수 많은 감정들은 서로가 공유했었는데 그 놈은 조금도 변함없이 원영을 외롭게 했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이었다. 언제나 쿨하고 여전히 멋있고, 원영은 여전히 뜨겁게 사랑하지만 인연이 아니라면 차는 사람은 결코 원영 자신이어야지 결코 그 놈이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토그래퍼 상혁을 지정하고선, 하루 전 날 촬영을 펑크냈다.
이제 진짜 끝이다.
그리고 이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디자이너로, 그렇게 원영은 인생 리셋에 대한 확실한 날짜를 만들었다.
그대 나를 보아도 나는 그대를 모릅니다.
목이 메여와 눈물이 흘러도 세월이 지나가면.
'까짓거 룩북 그런거 없이도 얼마든지 신상품 출시 할수 있어!!'
한벌에 10킬로그램은 족히 될 드레스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며 원영은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