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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08. 2018

입술을 깨물다

맥주고고씽

사람의 성질을 x좌표와 y좌표로 표기해 본다면 여러가지 방정식과 함수와 도형의 그래프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채연은 한 없이 멀어지는 포물선이나 원의  그래프가 인간 관계에는 이상적이고 반디시 그럴 것이라고만 믿으며 살아왔었다. 즉 그러니까, 상혁이 같은 사람은 난생 처음 본 것이다.


촬영이 대충 완만하게 마무리가 지어졌으면 이제 후반작업을 들어가면 될 일인데, 그전에는 애프터워크가 있기도 하거니와 약간의 뜨는 시간이 생긴다. 에너지를 쏟는 와중에 생기는 최고 절정의 흥분상태, 이건 오르가즘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일할 때 생기는 즐거움의 호르몬은 사람으로 하여금 엑스터시를 느끼게 한다고 채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반드시 그 만큼의 후유증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으레 상혁과 채연은 곤조를 부리게 되는데 서로 조금의 양보나 한치의 배려를 허용하지 않는다. 채연은 기독교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싸움이 생기면 기도를 했다.

'괜한 것으로 인해 마음 상하지 않고 싸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다독여주세요. 아멘~'

그러나 왠걸, 촬영이 끝나고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자마자 바로 땅바닥으로 추락을 하고 나면 그런 세상욕을 초월한듯한 수행자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내가 이거 수정본 정리했으니까, 상혁이 너가 장비 점검해주라."

"..."

상혁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야, 너 내말 안들려??"

채연이 장비장비 노래를 불러도 상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 이 킹딕!! 너 왕 *지!!!"

그렇다. 채연은 사실 욕쟁이다. 유치하기가 그지 없어서 되는대로 놀리기 일쑨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대꾸조차 없다.

그저 책상 머리 맡에 앉아서 허고에 뜬 구름만 잡고있다. 언제나 뭔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을. 당장 스튜디오는 반납해야할 장비와 지급해야할 비용과 가장 기본적인 세트 철수!

설마 이걸 나 혼자하라는거임?!?!

그러다 열받은 채연은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상혁이 그동안 애써 두 켠에 쌓아놓은 피규어들을 몽땅 집어 채연이 비닐봉지에 쓸어담았다.

"이거 자리만 차지하고 먼지만 쌓이니까 창고에 넣어둘께!! 그런줄만 알아!!"

이제 상혁은 견딜수 없이 열이 받았지안 이제와서 갑자기 채연의 말대로 장비 점검을 하기엔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이고 그렇다고 화를 내기엔 이 싸우에서 지게 되는 것만 같아 꿋꿋하게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르고 퇴근시간.


채연은 볼짱 다 봤다는 심정으로 잽싸게 가방을 싸서 자리를 박차고 호프집으로 향했다. 친구들. 다행히 현아와 무한이, 영철이가 맥주 한잔 하는 걸로.


현아와 친구들을 만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오늘 회사에서 동갑내기 상사가 돌아가지 않는 맷돌처럼 무겁게 채연을 짖눌렀다고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얼굴만 봐도 다크썰클 내려앉았구나, 뭐에 기겁을 했는지 기가 쇄했구나, 땀에 쩔었구나, 알기 때문이다.


플러스, 로맨티스트 현아는 이런 알싸한 상황에서도 슈가 무드로 모드 세팅하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난! 저 언덕 위에 독야청청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같은 남자가 이상형인데, 무한이 넌??"

"나? 난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꽃사슴, 영철이 넌??"

"흠~~나~안~ 홍콩에 떠다니는 엄청 거대한 유람선 같은 걸~.채연이는?"

"난, 프랑스에서 엄청 빠르다는 떼제베 고속열차같은 가이리치".


다들 속으로 채연이 보기보다 눈 엄청 높다고 생각하며 재밌는지 히히히 웃었다.


"현아, 너 안어울리게 시적이다, ㅋㅋㅋ"

"뭐야~~ 내가 먼저 시작했는데 점점 좋아지면 나만 손해잖아~~반칙, 다시 시작해~~!"

"왜~~ 시적인데~~"


웃고 즐기는 사이 커지려던 채연의 모공 크기는 그대로 더이상 확장을 스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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