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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r 18. 2024

[겨울밤+낭독여행] 손보미 <사랑의 꿈>중 표제작 리뷰

샛별BOOK연구소


연작소설 <사랑의 꿈> 중 '사랑의 꿈', 손보미, 문학동네, 2023. (391쪽 분량)



  주인공은 '그녀'다. 3인칭 시점으로 쓴 <사랑의 꿈>은 딸을 홀로 키우는 그녀 이야기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꿈'이 있었다. 대학교 때(22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는 결혼하자고 했다. 그녀는 시어머니 될 사람이 찾아와 우리 아들은 '정혼자'가 있다며 무슨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퍼붓기 전까지.  ‘근본도 알 수 없는 비천한’(p.143) 여자라며 말하기 전까지 사랑의 꿈이 있었다. 


  그녀는 학교도 그만두고, 그와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았다. 2년 후 덜컥 임신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는 결혼 문제로 부모와 연을 끊었지만 부잣집이었던 그의 부모는 아들이 사는 집은 그냥 뒀다. '사랑의 꿈'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세상 발칵 뒤집히게 결혼 해놓고 둘은 합의이혼을 한다. 남편은 집소유권, 양육권, 넉넉한 양육비와 생활비를 그녀에게 주겠다며 떠났다. 


  부산 본가로 내려간 남편은 3년 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 소설에는 무슨 사고였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이혼한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화자는 흔들린다. 소설은 <불장난>의 첫 문장 "남자들은 골칫거리지"라는 말을 상기시키듯 <사랑의 꿈>에서도 남성의 비중을 거세시킨다. 남성은 힘이 없거나 영향력 없거나 골칫거리의 존재성을 부여받는다. 그녀들만이 존재하는 -노파, 그녀, 딸-는  서사 구조다. 


  이 서사 중심에는 그녀가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여성'이 우뚝 서 있다. 시어머니, 남편의 엄마, 딸의 할머니. 호칭을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와 그녀 사이에 깊은 골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은 단어는 '노파'였다. 노파(늙은 여자)는 권력이 존재하지 못한다. 삶의 끝자락에 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다 늙고, 힘없는 여성의 이름은 노파였다. 그녀는 그녀(시어머님)을 노파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제야 호칭을 찾았다. 딸은 할머니(노파)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노파를 보기 위해 요양원에 찾아간다. 


  그녀는 노파를 세 번 만난다. 노파는 그녀에게는 각각 다른 여성으로 존재했다. 첫 번째 만남은 자신의 학교로 찾아온 그의 어머니를 볼 때였다. 그때 본 노파는 '체면따위는 벗어던지고 자신을 경멸하는 데 몰두했던 여자'(p.146)였다. 두 번째 만남은 딸의 할머니로 만날 때였다. 노파는 아들이 죽자 며느리를 플라자 호텔에서 만난다. 이때 본 노파는 업신여김이나 경멸 따위는 없었고 '정중하고 엄숙한 분위기'(p.146)였다. 세 번째는 시어머니로 만난 노파였다. 그녀는 노파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요양원에서 본 노파는 눈의 초점을 잃고, 감정을 잃은 약간 쌀쌀맞은 말투였다. 노파를 보며 그녀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겨우 세 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노파는 여러 층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자신이 증오하는 저 노파를 딸은 "할머니"라 부르며 살뜰하게 챙긴다. 시청 플라자 호텔에서 만났을 때 노파는 그녀에게 손녀를 여름마다 보름이나 한 달가량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대신 양육비와 생활비는 그대로 지불하겠다면서. 여기서 그녀는 '지불'이라는 단어를 거슬려 했다. 딸을 보내면 값을 치르겠다는 노파의 의도가 명백했다. 노파는 대신 재혼하면 그날로 양육비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계약(?)으로 딸은 일곱 살부터 여름이 되면 부산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할머니 집을 다녀온 딸은 그녀를 들쑤셨다. “할머니네 집에서는 감자를 이런 식으로 먹지 않았어요.”, "할머니네 집에서는 여름마다 진짜 바다에 갔는데."(p.158) 등등.  그녀는 딸이 할머니 댁과 관련된 문제로 자신을 들쑤시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또, 그녀는 딸이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마다 사립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공주연의 말이 떠올랐다. “애들은 정말 성가셔요. 쓸데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가끔씩은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죠?”(p.159).  공주연이 운영하는 ‘탈엄’(일탈중인 엄마들)이라는 모임에 가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여러 여성을 만난다. '탈엄'은 ‘열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보름이나 한 달 간격으로 한집에 모여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모임’(p.143)이다. 여기서 그녀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학교를 중퇴했느냐고. 그녀는 남편을 사랑해서라는 말 대신 “임신을 했거든요.”(p.144)라고 말해버린다. 자신의 인생이 꼬인 건 피임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는 푸념을 담아. 


  ‘그녀는 딸을 떠나고 싶었다’(p.168)라는 생각을 했고, 떠날 무계획도 세운다. '탈엄'모임에 갔다가 그곳에서 리스트의 <사랑의 꿈>연주를 듣는다. 이곡을 듣는 순간 그녀는 사라질 실행에 옮긴다. 혼자 몰래 빠져나와 시동을 거는데 바로 그때 공주연이 차에 타버렸다. 휴. 그녀는 공주연을 우선 집에 데려다주고 '사라질'계획이다. 그런데, 국도를 달리다 고양이를 친다. 그녀와 공주연은 고양이를 묻는다. 묻으면서 느껴지는 용기, 해방, 자유, 카타르시스, 죄책감을 느낀다. 더불어 미친 짓도. 그렇다. 그녀가 지금 하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는 걸 자각한다. 딸을 두고 떠나려는 짓, 살아있는 고양이를 묻으려는 짓. 그녀는 그동안 패배의식으로 없던 권위를 부여받는다. '권위'는 딸을 책임져야 하고, 고양이를 묻어야 하며 자신이 삶을 수습해야 한다. 


  이제야 그녀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공주연에게도, 세상에게도 자비를 베풀 마음이 들었다. 이날을 시점으로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삶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p.185)했다. 고양이를 묻기로 한 결정. 그것이 그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후 그녀는 노파와 남편과 딸의 관계들을 혼자서 스스로 풀고 다독이며 살 힘을 얻는다. 


 그녀는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딸에게 십일 년 전 있었던 '그날'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남겨두지 않고 딸에게 고백하리라. 어떤 사소한 결정과 충돌이 어떤 결과로 몰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 그날 이후부터 '사랑의 꿈'을 꾸며 살 수 있었다고.  


  <사랑의 꿈>은 그녀가 홀로 딸을 키우며 들끓는 시간들을 고백한 글이다. 남편은 죽고, 그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시댁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p.164)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던 세월들. 더 이상 그녀는 '정치적인' 것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날. 당당하게 자신으로 설 수 있었던 그날. 우리에게도 '그날'이 존재할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의 방향을 틀었던 사건. 작고 소소하지만 크게 작용했던 결과들. <사랑의 꿈>은 다시 꿈을 꾸라고 들려준다.   


[겨울밤+낭독여행] 샘들~ 필사 감사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그녀(주인공)는 정혼자(무역업을 하는 집의 딸)가 있는 그와 결혼한 일에 대해.

-시댁에서 그녀를 ‘근본도 알 수 없는 비천한’(p.143) 여자라고 했던 행동에 대해.

-그녀가 대학생 때 임신을 해 결혼식도 안 올리고 사는 상황에 대해.

-그녀와 그(남편)가 이혼을 하고 집 소유권, 양육권(딸 3살), 양육비를 받는 상황에 대해. 

-딸에게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요양원에 가보자고 하는 그녀(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딸이 친가와 관련된 문제로 자신을 들쑤시고 싶은 욕망,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 대해. 

-일곱 살 때부터 여름마다 딸을 남편의 본가에 보름 또는 한 달가량 맡기는 상황에 대해.

-그녀가 이혼 후 딸이 열 살 되던 해 사립고등학교 행정실에 계약직으로 취업하는 상황에 대해.

-‘열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보름이나 한 달 간격으로 한집에 모여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모임’(p.143)에 대해.

-모임에서 그녀에게 ‘왜 대학을 중퇴했느냐고’ 묻자 “임신을 했거든요.”(p.144)라는 답변에 대해.

-모임에서 소설가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도 소설은 되지만 “하지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돼요. 그러니까 그건 언제까지나 당신 마음속에만 있어야 해요.”(p.145)라는 말에 대해. 

-딸의 사진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그(남편)의 부모님 행동에 대해.

-본가로 내려가고 삼 년 후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남편에 대해.

-아들이 죽자 그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돈을 계속 지불할 테니 손녀딸과 여름마다 함께 보내고 싶다는 조건에 대해.




-그녀가 으리으리한 요양원에서 노파(남편의 어머니)를 본 상황에 대해.

-딸이 노파(친할머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할머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본 그녀의 심정에 대해.

-그녀(주인공)가 딸이 되어 소설(p.151)을 쓴 부분에 대해.

-그녀가 노파(남편 어머니)를 세 번 만나는 각각의 상황에 대해.

① 대학생 때 자신의 아들은 정혼자가 있다고 하며 찾아왔을 때 

② 남편이 죽은 후 시청 앞 플라자 호텔에서 만났을 때

③ 노파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만났을 때

-요양원 병실에서 자신을 노파에게 소개해 주지 않는 딸에 대해

-병실에 있는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노파에 대해

-노파와 딸이 간호사(하얀 옷)의 옷차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대해

-“할머니네 집에서는 감자를 이런 식으로 먹지 않았어요.”라며 할머니 집과 비교하는 딸의 말들에 대해 (p.158)


-“애들은 정말 성가셔요. 쓸데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가끔씩은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죠?”(p.159)라는 말에 대해.

-이 말을 하는 공주연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공주연이 운영하는 ‘탈엄’(일탈중인 엄마들)이라는 모임에 대해.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p.164) 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그녀는 딸을 떠나고 싶었다’(p.168)라는 생각에 대해.

-‘십일 년 전 그때, 그녀가 세운 계획은 그 정도였다.’(p.172) 남쪽으로 떠나려 했던 그날에 대해. 

-아이를 두고 떠나려고 한 그녀에 대해.

-마침 공주연이 차에 올라탔고 함께 국도를 달리다 고양이를 친 사건에 대해.

-살아있는 고양이를 묻자고 하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옆에서 울면서 고양이 묻는 일을 거드는 공주연에 대해.

-그녀가 공주연을 보고 ‘자비를 베풀 수 있었다’(p.181)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딸에게 그날에 대해 이야기해 주리라고. 자신이 떠나려고 했던 그날 밤에 대해.’(p.184) 말하는 부분에 대해. 

 -십일 년 전, 고양이를 묻은 날에 대해. 

-‘여자가 건반을 누르는 소리만 집안에 울려 퍼졌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다.’(p.170) ‘사랑의 꿈’ 제목에 대해. 

-그 외 



발췌



요양원에 가보자고 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의 딸은 그저 소식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셨어요.” 그 말을 하기 전에 딸은 시선을 내리깐 후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별것도 아닌 사실을 내뱉었을 뿐이라는 듯이. 그러고는 들고 있던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p.135)


이혼할 때 그는 그녀에게 집의 소유권과 양육권(그들의 딸은 세 살이었다)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매달, 쓰고도 남을 만한 양육비와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그녀는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해, 그러니까 딸이 열 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돈을 벌기로 결심했고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사립고등학교 행정실에 계약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p.143)




그리고—왜인지 알 수 없지만—곧 소설가의 그 말도 떠올랐다. “어떤 사실은 그저 있는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된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써서는 안 돼요. 그러니까 그건 언제까지나 당신 마음속에만 있어야 해요.” 딸을 남쪽 도시에 있는 장례식장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돌아온 날 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써야 한다고 느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뭐가 진짜로 일어난 일이고 뭐가 아닌지, 그녀가 숨겨둬야 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이 뭔지 몰랐다. 그래도 그녀는 썼다. (p.150)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삶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어떤 부분이 영원히 깨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진정한 초능력이. 하지만 그녀는 아주 작은 선택들, 아주 사소한 충동의 결과들이 누군가를 들끓게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런 결정들이 삶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p.185)


‘여자가 건반을 누르는 소리만 집안에 울려 퍼졌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다.’(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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