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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Oct 15. 2024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리뷰

샛별BOOK연구소

이제 그만 나무가 되고 싶다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소설로 한국인 최초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이다. 선정이유는 이렇다. “<채식주의자>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문단의 평가는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다.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감성적인 문체에 숨이 막힌다” ,“인간적인 보편성이 표현됐다.” 등이다. 한강의 수상소감은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인간이 폭력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 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조곤조곤 조용한 말투로 인터뷰하는 한강 작가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영국 맨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이 있다. 맨부커상은 문학의 트렌드를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이번  수상으로 우리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또한, 쟁쟁한 경쟁자인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2006년) 오르한 파묵과 중국의 거장 옌렌커를 제치고 수상했다는 점도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상금은 5만 파운드(8천만원 상당)이며 공동수상가인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나눈다.


  1970년 광주에서 출생한 한강은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재직중이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무>,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등이 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유명하며 시로 등단하여 일찌감치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됐고 해외에서는 2015년 1월부터 판매했다. 소설은 '폭력'을 주제로 다루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단편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 서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K-Literature Writers" 에 실린 소설가 한강의 목소리다.


“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영혜라는 인물인데요, 이 사람은 완전한 결백을 실현하기 위해서 채식을 하게 돼요.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폭력성, 세계의 폭력성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토해내기 위해서 완전한 채식을 하게 되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인간이 아닌 식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고기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어떤 탈진의 상태를 상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구원하려고 하는 그런 몸짓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10년 전에 <내 여자의 열매>를 썼는데요, 상상적 탈진이 아니라 실제로 식물이 되어 버린 아내를 화분에 심어서 물도 주고 가꾸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 소설을 쓰고 이 소설의 변주를 쓰고 싶다는 것이 첫 번째 계기이고, 두 번째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폭력성에 대한 의문과 의심과 질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간이 결백하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하고자 할 때 무엇을 무릅써야 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 속에서 채식주의자를 쓰게 됐습니다. 인간이 결심했을 때 결심의 결과는 무엇일까 죄는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독자가 제 책을 읽으면서 한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20대 후반에 몇 년 동안 채식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에 작중의 영혜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하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 후로 몸이 안 좋아져서 조금씩 조금씩 전향을 해서 지금은 채식주의자는 아닌데 아직도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요,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는 언제나 불편한, 죄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제 주변에 보면 육식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다른 생명을 해해야만 목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서 깊은 성찰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는 채식에 대해서는 했었고, 저는 육식이 조금 불편하고 그런 정도의 사람입니다.”


  인터뷰는 『채식주의자』를 쓴 동기와 소설 과정에 대해 말한다. 한강 작가가 20대 후반에 채식을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주인공 영혜를 그리며 작가의 간접경험이 들어가 있다. 『채식주의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질문, 인간이 가하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채식주의자>는 남편이지만 가족, 이웃들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가해지는 폭력, <몽고반점>은 제부와의 관계에서 탐미적으로 믿고 있지만 예술에서 던지는 의문의 폭력, <나무 불꽃>은 언니 인혜와 동생 영혜 사이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폭력을 다룬다.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의 시각에서 쓰였다. 남편은 영혜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영혜를 결혼 대상자로 선택한 것이다. 어느 날 아내는 육식을 거부하며 채식주의자가 되어 간다. 남편은 일어나 보니 출근시각이 지났고 아내는 냉장고 앞에서 쪼그려 앉아 냉장고에 있는 고기들을 죄다 꺼내 버리고 있다. “와이셔츠 다려 놓은 거 없어?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욕실 앞의 빨래통을 뒤져 어제 던져놓은 셔츠를 찾았다. 양말을 신고, 수첩과 지갑을 챙기는 동안에 아내는 부엌에서 나와보지 않았다. 결혼 오 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뒷바라지와 배웅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쳤군, 완전히 맛이 갔어.”(p17)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느라 아내의 이상행동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서로 부부지만 별로 아는 게 없는 사이다.


  영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지낸다. 갑갑하다는 이유다. 채식만을 먹기 시작하며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다. 남편에게 고기 냄새가 난다며 섹스도 거부한다. 아내는 점점 말라가고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처갓집에 이 상황을 알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는 지점은 별로 안 보인다.


  처형 집들이가 있던 날 장인은 아내에게 입을 벌려 탕수육 한 점을 먹게 하려다 결국 영혜는 손목에 자해를 가한다. 가족들은 영혜를 끝끝내 병원에까지 입원시킨다. 다 큰 딸의 따귀를 때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의 비극을 본다. 회식자리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비난의 한마디들, 언니와 형부의 무덤덤한 반응들, 아버지가 가하는 육체적 폭력과 흑염소를 다려 병실로 배달하는 끈질긴 모성을 두고 우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타자가 평범하거나 비슷한 행동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혜는 먹는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그녀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폭력에 결혼 후에는 남편의 상황에 맞춰서 살아야 했다. 이젠 그 사슬을 끊고 싶어 몸부림치며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영혜는 자신의 과거를 버리며 철저하게 채식을 실천한다.


  <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점에서 영혜를 기술한다. 손목을 그은 처제를 업고 달리면서 '그녀가 살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는 의문했다'(p82). 처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는 처제가 또 자살충동을 느낄 것이라 직감한다. 그때는 주도면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처제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에게 구역질을 느낀다.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자신이 찍고자 하는 한 장면이 있다. 처제의 일이 있고 나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에 일종의 폭력을 느끼며 “구역질 나게 했고,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앞으로 오랫동안 작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는 그때 했다. 단 한순간에 그는 지쳤고, 삶이 넌더리났고, 삶을 담은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p84). 그 장면을 찾기 위해 공연도 가보고, 일본 작가의 작품에서도 찾으려 했지만 낙담만 했다. 아내가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가벼운 전율을 느끼며 발기를 경험한다.


   그가 생각하는 장면은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장면은 불가해할 만큼 정확하고 뚜렷한 인과관계로 묶여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p.74). 그는 오랫동안 찾아온 해답을 처제에게 발견한다.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처제와 연결하여 작업을 하려고 했을까? 그는 점점 균열되기 시작하며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이 답을 그는 더 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p76)


나무가 되고 싶었던 영혜는 형부가 몸에 꽃을 그려주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안 지워지면 좋겠어요.(p109)”라는 말에 그는 오히려 미친 쪽은 처제가 아니고 자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완성된 작품의 러닝타임은 4분 55초였다. 엎드린 그녀의 몸에 바디페인팅하는 그의 손으로 시작해 몽고반점으로 페이드아웃되었다가, 그늘져 거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는, 사막 같은 그녀의 얼굴이 비친 뒤 다시 페이드아웃되었다. 밤샘 뒤의 피로, 몸 곳곳에 모래알이 박힐 듯 깔깔한 느낌,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이는 이물감을 오랜만에 경험하며 그는 마스터테이프의 라벨에 검은 펜으로 적었다. ‘몽고반점 1- 밤의 꽃과 낮의 꽃’(p115)” 그러나 그의 작업의 최종목적은 ‘몽고반점 2’에 있었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점점 매혹적인 곳을 향해 빠져들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캠코더에 모든 자신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만족한다. 앰뷸런스가 도착하는데도 그는 어제 처제와 했던 작업들을 상기시키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는 그녀의 연둣빛 몽고반점을 보았고, 거기 수액처럼 말라붙은 그의 타액과 정액의 흔적을 보았다. 갑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겪어버렸다고, 늙어버렸다고, 지금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p147)


  <나무 불꽃>은 영혜 언니 인혜의 시점이다. 인혜는 맏딸로 믿음직스럽고 씩씩하다. 열아홉 살에 집을 나온 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서울 생활을 하며 화장품 가게를 열어 가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인혜다. 축성 정신병원에 동생을 면회 가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영혜 집에서 남편을 발견하고 둘을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다. ‘신고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이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눈조차 믿을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남편의 행동이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p167). 남편은 알려진 예술가이고 병원에서 정상으로 판명되었고 소송과 구명운동 끝에 풀려나고 잠적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영혜는 폐쇄병동에서 고기뿐만이 아니고 이젠 음식을 모두 거부하며 지내게 된다. 인혜는 남편을 생각한다. “그 기묘하고 황량한 영상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을까......”(p218).


  독자는 망연자실한 인혜를 보며 슬픈 비애를 느낄 것이다. 남편의 행동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어디서부터 되돌릴 수 있는지 인혜는 알지 못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인혜는 과거를 되돌리며 그 지점을 찾지만 알지 못한다. 복합적인 요소들이 뭉쳐진 폭발의 파편들을 찾으려 해도 엉켜버린 시간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건 남자. 인혜는 그것의 희생양일지 모른다. 성욕과 예술의 경지에서 그 선을 넘어버린 남편을 세상의 논리로는 해석이 안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말인가. 인혜는 알고 있었을까. 스스로 자신을 버려야만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술은 잔인하다. 인혜도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아이와 뒷산에서 죽으려 했던 적이 있다. 영혜는 물구나무를 서며 자신이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모든 장기를 말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수액과 약을 거부한다. 언니는 말한다. “......이건 말이야. ......어쩌면 꿈인지 몰라.”(p221).


  소설은 탐미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팽팽한 구도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읽는 내내 숨죽이고 인물들의 상황을 쫓아가게 된다. 독특한 소재와 비극성을 지닌 작품이 한강의 시적 문체와 호소력 있게 펼쳐진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갈등을 가면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때론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말이다. 인혜와 영혜, 남편과 형부를 보면서 직, 간접적인 폭력에 대해 한강은 말한다.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다. 그 지점을 예민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미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광기 어린 눈빛으로 나무가 되기를 원했던 한 인간에 대해 우린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2016. 6.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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