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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Jun 25. 2023

웃긴 건 나야 니들이야...'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북적북적 385: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듣기


"번듯함, 경력, 이름값을 얻는다는 것, 그것이 허락하는 달콤함, 하지만 여전히 너무 같거나 달라서는 안 되는 위태로운 생존 방식,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에 계속해서 찔리게 되는 나의 맨살 같은 것.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에필로그]에서


40 넘어가도 혼자 살면 ‘독거노인’이라는 걸 농담으로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최근 본 기사에서는 작년 하반기 기준으로 전국의 1인 가구가 772만명이나 된다고 하더군요. 전 연령대를 망라한 거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고 보편화됐다는 얘기죠. 서른 전후해 결혼하고 일이 년 뒤엔 아이를 갖고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스테레오 타입의 삶이 그만큼 보편적이지 않아졌습니다.

이반지하, 퀴어를 뜻하는 이반과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뜻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을 쓰고 있는 예술가가 쓴 이 책도 보편과 특수성을 넘나듭니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처음엔 제목만 보고 정말 포복절도하는 유머 에세이인 줄 알았습니다만, 재미있긴 하지만 꼭 웃기지만은 않습니다.


"그대, 

만인을 제치고 그대를 웃게 한 나를 

그저 경이로운 자연이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그대,

이반지하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대,

이반지하처럼 말하겠는가,

이반지하처럼 살겠는가.

니,

그래서 이렇게 나는 웃긴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그가 웃긴 이유는 아무도 닮고 싶거나 되고 싶지 않는 웃기는 삶이어서 그렇습니다. 책 소개의 한 대목을 옮겨보면요, 성적 지향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두고 차별씩이나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반지하가 옆구리 쿡 찌르며 건네는 웃음보따리이자 서늘한 질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는 당장 눈앞의 호기심을 충족하고픈 비릿한 욕망과 여전히 젠틀맨으로서의 위신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회적 자아의 비틀대는 싸움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에라 한 발을 더 나갈지 아니면 끝끝내 멈춰낼 것인지, 그의 젠틀은 다시 없을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손상된 젠틀맨을 위하여]에서


"‘성소수’ ‘퀴어’ ‘젠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안 된 애들 얘기를 대놓고 쓰기는 좀 그러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 싹 들어내자니 또 좀 그렇고 정말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별종. 초겨울 기상이변 속 모기물림 같은 이 말이 방송 자막에 등장했을 때, 나는 위기에 내몰린 제작진들이 발휘해낸 번뜩이는 재치와 어휘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성애 사회는 얼마나 기발해질 수 있는가... 


못다 뱉은 말, 퀴어. 꿈엔들 잊힐 리야, 성소수. 그래, 이 말을 하기가 많이 어려우셨겠다.

-[섭섭 세상]에서


제목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다시 보면 '나'는 물론 작가 이반지하 본인을 가리키겠지만 스스로가 웃기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반지하가 뭔가에 대해 웃기다고 여기기도 하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듯하네요. 세상이 이렇게 웃기기도 한 거죠. '정치적 올바름'을 장착하지 않고 있으면 개념을 어디에 갖다 버린 것처럼 보이는 시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가 썼듯이 "한 2050년쯤에 '차별금지 하알까 마알까 법' 정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공존하고 있으니 웃깁니다.


저 자신도 그렇습니다. 종종 쿨한 척, 열려있는 척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반지하를 만나면 "너도 웃겨" 한마디 듣겠다 싶습니다. 살면 살수록 제가 몰랐거나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표피만 접했거나 혹은 간과하거나 짐짓 무시했던 세계가 넓고 또 깊다는 걸 느낍니다. 


"끝없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삶 속에서 잠시라도 머물 곳을 찾기 위해 하는 말, 렛 미 인.

다음에는 나도 렛 미 인, 같은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아무리 멀리 던져버려도 악몽처럼 되돌아오는 탱탱볼 정도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부딪치든 딱 그만큼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작고 꽉 찬 싸구려 형광색 공.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쪽이다."

-[렛미탱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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