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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Apr 02. 2023

핑계

언제부턴가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 ㅡ 사실 어릴 적 나는 누구보다 말이 많은 소년이었다.  모두가 듣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렇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ㅡ경청했다ㅡ라고 구태여 치장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솔직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와 관련 없는 혹은 흥미 붙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듣고 또 들었다. 미움받기 싫어서.


어느샌가 주변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밀 가득한 속마음 이야기, 떠나간 인연과 시작하는 사랑의 이야기, 증오와 슬픔의 이야기. 겹겹이 쌓이는 감정만큼 내가 가라앉는 것도 모른 채. 아 ㅡ 미움받지 않으려면 내가 아파야 하는구나. 불행하게도 소년은 그것을 너무 빠르게 깨달았고 그냥 곪을 때까지 아프기로 결정했다.


누군가 억지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계속 그렇게 살겠지만.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흘러온 시간 속에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새대가리 같은 인간이 되었다. 이제 미움받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우울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위태롭게 일렁거리는 불빛에 홀려 생채기 가득한 마음을 끌어안고 살고 있음에도 또 오늘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겠지. 타인의 우울은 생각보다 달다. 대부분 자신의 기쁨을 나누기보다 슬픔을 나누어 가져가길 바라기에.


어느덧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법을 까먹은 바보가 되었다.


솔직히 안 궁금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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