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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May 24. 2023

23년 상반기 영화 감상 일기


글감이 통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다 이번 년 들어 보았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조각글 형태로 남기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한 달에 몇 편 정도의 영화를 감상하시나요?,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줄긴 했지만 한 달에 4-5편의 영화 정도는 꼭 보려고 노력합니다. 범람하는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그래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영화들만 골라보았습니다.





1) 스펜서 (2022)


 영화 제목처럼 다이애나 왕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사람들에게 유명한 소재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인물의 서사를 각색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완벽에 가깝게 이야기를 풀어내었습니다. 영화 내용과 별개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엄청난 연기력은 영화를 일인극처럼 보이게 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트와일라잇으로 익숙했던 분들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로 성장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다이애나가 살아생전 가졌던 불안과 압박감 그리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담긴 삶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우중충한 영국 특유의 가라앉은 무채색의 색감과 왕실만의 화려함과 싸늘함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답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게 만듭니다. 충분히 자극적으로 다룰 수 있었던 (어쩌면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이미 그렇게 다뤄진) 이야기 소재를 정말 예쁜 보석을 세공하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찬란하게 풀어 나가는 모습들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2) 아밀리에 (2001)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영화입니다. 나온 지 시간이 꽤 시간이 흐른 영화임에도 좋아하는 작품 5개를 꼽으라고 하면 꼭 포함시키니까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들도 사랑하지만 여전히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낭만은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금 독특한 캐릭터를 배치하는 듯 보이면서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시간에서 마주하는 정말 사소한 것들 그리고 그 순간에 반짝이는 인연들이 어떻게 서로 얽혀 나가는지 보여줍니다. 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강점인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들로 영화가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을 단순히 예쁜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지 않습니다. 영화 내에서 펼쳐지는 색들은 뚜렷한 주제와 의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드리 토두가 연기하는 여주인공은 영화사를 통틀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디 그녀가 보낸 특별한 48시간을 따라 조금 엉뚱하지만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파리의 모습을 즐기길 바라겠습니다.



3) 원스(2007)


 비긴어게인, 싱스트리트, 라라랜드 등 (어쩌면 위플래시까지) 한때 메타장르가 되었던 음악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론 가장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음악 영화들이 자극적인 맛을 가졌다면 원스는 느리게 그리고 조금은 투박하게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연결된 두 남녀가 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제는 다소 진부해진 플롯으로 다가올 수 있는 소재를 자극적인 갈등구조 없이 사랑의 감정선을 자연스레 느끼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가졌습니다. 최근 만난 한 지인이 그림책을 소개하며 "그림이 없거나 글이 없거나,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림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만큼은 음악과 이야기 어느 한쪽이 없으면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위해 음악이 쓰이는 영화들과 비교되는 원스만의 특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존 카니 감독의 다음 작품인 비긴어게인도 충분히 훌륭한 음악 영화 였지만, 이 영화만의 조악함과 투박함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다면 어느 지점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셨는지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4)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8)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투박한 화면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애틋한 감성 때문일까요? 다소 괴팍해 보이는 사랑이야기에도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요? 다소 클래식한 질문을 영화는 무척 유려한 모습으로 답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때론 부족할 수도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서로 사랑하며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유명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 혹은 변했던 모습들을 떠올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배출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사랑스러운 강아지는 총 9마리가 연기했다는 소문은 비밀로 해주세요.



5)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2023)


 시리즈의 마무리를 보는 것은 팬으로서 매우 마음이 힘든 일이지만, 행복한 마무리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기에 기분이 정말 묘했습니다. 엔드게임은 너무 성대한 나머지 '마블의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마무리는 '역시 이 캐릭터들이라면 이렇게 마무리 지었을 거야'라는 만족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결핍 가득한 캐릭터들이 모여 히어로가 되었고, 이제는 팀을 넘어 가족이 되는 모습에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주요 플롯인 로켓의 서사는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너무 많은 상처를 가진 나머지 타인의 따스함과 사랑까지 밀어내며 살아야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살아가다 보면 타인의 따듯함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부디 각자의 상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한걸음 더 나아가길 바라며. 더 이상 제임스 건의 가오갤 멤버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고 사랑했던 그들이 이 우주 어딘가에서 행복하길 바랍니다.




6) 놉(2022)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잔인한 연출이 따라오기 때문에) 조던 필 감독의 작품만큼은 꼭 챙겨보는 편입니다.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은 단순히 순간의 자극을 위해 소비되는 호러 혹은 스릴러물과는 다른 영역의 영화니까요. 놉 역시 조던 필 감독만의 철학이 깊게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미디어 산업과 단순히 그것을 소비하는 대한 날카로운 비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미디어가 사람들을 어떻게 단체로 미치게 만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그런 것들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바보같이 열광하는지 그려냅니다. 작중 인물들처럼 제 자신도 미디어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가장 무서운 것은 이제 미디어는 소비자의 탓을 한다는 겁니다. 너네가 선택해서 보는 거잖아? 라며, 스마트폰의 탄생과 유튜브의 팽창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작은 화면 안에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소비하지 않고는 대화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되었으니까요.





7)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좋은 영화는 세상을 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라는 이동진 평론가님의 한줄평 보다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플롯 자체는 미국 특유의 가족 영화들과 비슷한 플롯으로 따라가는 듯 보입니다. 아이의 환경과 부모의 사랑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그리고 돈과 환경보다 부모의 사랑이 옳다고 마음 편히 끝내버리는 그런 영화들. 플로리다 프로젝트만큼은 그런 진부한 영화들처럼 단순히 가족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느 영화보다 슬프고 어려운 이야기를 리얼리즘으로 그려내면서 그것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으니까요. 과연 사회와 도덕적인 관념에서 무엇이 옳은 걸까요? 영화는 우리에게 답이 아닌 질문을 합니다. 디즈니 랜드 외곽이라는 배경과 파스텔 색감이 주는 찬란함과 비참한 현실을 삻아가는 모녀의 비대칭적인 모습들이 주는 묘한 감정들은 제가 가진 단어들로 차마 표현하기 어렵습니다.여러분은 영화의 크레디트를 보며 도덕적 관념에서 어떤 것이 옳다고 믿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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