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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

by 느시



1)

어젯밤 꿈속에서 윤슬이 빛나던 바다를 보았어.


일렁이는 물결 아래 가라앉아 버린 것들과 부수어지는 파도에 밀려온 것들을 가득 두 눈에 담고선,

너와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해묵은 감정에 무릎을 끌어안았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렇게 보아도 될까요?

더는 흘러간 것들을 사랑하는 게 아닌 채워질 것들을 사랑하고 싶어요.


손 끝을 따라 흐르는 감정들을 밤하늘에 은하수로 그렸어.

사랑하는 마음이 지구만큼 그다음엔 목성만큼 커질 것 같다는 너의 문장을 곱씹었어.


부디 까만 우주 어딘가에서 이 작은 창틀을 보고 있길 바라.

우리 창틀 너머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것을 사랑하기로 약속했으니까


2)

- 그거 알아? 골목 가로등 불빛은 그날 지나친 것들을 모두 기억한대.

그래서 가끔은 무언가 잊기 위해 껌뻑 껌뻑 거리는 것 일지도 몰라.


한순간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너를 바라보며,

헤죽 웃는 나에게 그렇게 바보같이 웃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너를 사랑해.


한 여름밤 일렁이는 불꽃처럼 아슬아슬한 춤을 추며,

네가 가진 색을 나누어 내 마음을 물들이던 너를 사랑해.


숨기고자 했던 모습들과 보이고자 했던 모든 형태의 너를 사랑하려 해.

마주 잡은 작은 손에 새겨진 네가 살아왔던 커다란 삶 전부를 말야.


더 이상 사랑도 외로움도 내겐 자격이 없겠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라면

그렇다면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 한없이 떨어져도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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