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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Apr 02. 2024

묵호



 소금기 섞인 바람과 겹겹이 쌓인 바람을 더듬으며 비루한 하루를 보냈던 날입니다. 폐 속 깊이 스며든 허무함에 툴툴거리곤 또 끝없이 반복되는 도로를 달리며, 때로는 흘러나오는 음악과 긴 침묵을 눈동자에 담고는에메랄드 빛 윤슬 위에 일렁이는 당신을 담아 보냅니다. 코끝에 스치는 비린 내음과 넓게 펼쳐진 부둣가를 보며 출발하지도 돌아오지도 않을 것들을 떠올립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아래에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했지만 그때에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건 차마 숨에 새긴 것들을 뱉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깊이 잠든 고요를 부수던 밤바다의 파도 소리와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바닷물을 마시던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초라한 지금의 모습을 빗대었던 밤입니다. 아아ㅡ 과거를 더듬으며 문장을 이어나갔던 우리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올라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스치는 바람에 손에 든 담배만 타들어가던 그날 밤.


 더는 부르지 못할 이름과 부르지 않을 이름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묵호의 바다라고 기억하려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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