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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Aug 13. 2021

뜨겁고 다정했던 팔월의 제주

뜨겁고 다정했던 팔월의 제주.  기분 좋은 후덥지근함 덕에 아무 거리낌 없이 벌거벗을  있었던 걸까. 더불어  깊숙이 묻어뒀던 그늘을 그곳에 모두 풀어놓고 왔다. 지금보다   여름에  다시 만나러 가야지. 한층 밝아진 얼굴을 하고서. 반가운 볕을 잔뜩 몰고 찾아가야지.


대신  계절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자연을 마주하며 반사적으로 사색하고,  공간과 장면이 내게 주는 선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주워 담았다. 달리는  바깥으로  없이 이어지는 초록을,  나게 숨은 어린아이처럼 하얗게 피어난 백합을, 푸른 잔디밭을 사이좋게 뛰노는 누렁이  마리를, 고개를 들고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발견한 구름들과 그곳에 윙윙 빗금을 쳐대는 잠자리를, 까치발을 들어도 한눈에  담을  없는 드넓은 귤밭을, 내게 겸손함을 심어주는 거대한 바위산을,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품고 흐르는 파란 바다를, 까만 바위 사이사이를 호령하는 당당한 꽃게를, 열심히 익어가는 사람들을 품고 하루와 함께 노란색으로 깊어지는 해변을, 담벼락과 아주 절친한 사이를 자랑하는 능소화를,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들판을,  위로 보란 듯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좋은 이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그들의 웃음을 바라보며 덩달아 행복해하는 나를  줌도 놓치지 않고 전부 담아왔다. 아무 조건 없이도 내게  주지 못해 안달인 마음이 있음을.


이렇듯 나를 커다란 폭으로 진동케 하는 것은  원시적인 깨달음. 자연이 알려주는 활짝 열린 마음. 무언가 외롭고 벅차다면 언제나 달가운 머무름으로 변함없이 반겨주는 자연을 찾아야지. 그들은 나를  번도 미워한  없었으니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문득 그동안 나를 떠난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빠르게 뇌리를 통과했고,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을 꿀꺽 삼켰다. 아무렴 괜찮았던 팔월의 제주, 여름. 아름다운 것들이 이렇게 실재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했으니, 더는  삶과 세상을 의심하지 말아야겠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그리 자부하며 너무 많이 울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가야지.


겨울의 제주와  다른 여름의 제주가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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