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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Feb 28. 2022

love

결혼


1.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다. 함께 있는 순간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세상  누구보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운 사람과. 덕분에 처음으로 이렇게 우울이 조금도 묻지 않은 근황을 쓴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사랑을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축하한다는 말을 가득 들을 자격이 충분한 사랑이라 자신한다.


2. 결혼이라는 두 단어를 입에 담은 이후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커다란 행복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올려다본 달처럼 넓게 넓게 퍼지고 있다.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무거운 약속이 조금도 겁나지 않는 일. 우리 둘 모두가 철저히 웃음 속에 뒤덮여 살아가게 되리라는 다정한 확신이 분명히 있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확신까지도. 진짜 사랑이라는 게 이다지도 힘이 세다. 맞춰 끼운 반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이렇게까지 행복만 가져도 되는 걸까 싶지만, 영양가 없는 고민은 내일의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3. 애인의 반려묘인 베리(한국 이름은 김말숙) 귀여움에 흠뻑 빠져 지낸다. 강아지도 아니면서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올 때면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어느새 폴짝 뛰어 올라와  옆에 똬리를 트고 자리를 잡는다.  창문 밖은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강추위에 엉덩이를 부르르 떨면서도 바깥 구경을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애인과 함께 캣타워를 조립해두었는데, 진종일 타워의 꼭대기 층에 엎드려 자신의 이두박근 자랑을 그렇게 해댄다.  근황을 쓰는 지금도 탁자 위에 올라와 식빵을 굽고 있는 베리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번에 사랑을 둘씩이나 얻은 나는 어쩌면 지상 최고의 행운아가 아닐까?


4. 애인은 요리를 무척 잘한다. 자신은 아니라며 몇 번이고 손사래를 치지만, 애인이 만들어 준 명란 아보카도 덮밥은 돈을 받고 판대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맛이었다. 어제 만들어 준 꼬막무침과 달래 된장찌개는 또 어땠나.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도 아쉬워 밥솥을 힐끗힐끗 쳐다볼 정도였다.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 위해 주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애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람이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울컥함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고, 그런 요리사 애인의 충실한 보조가 되어줌과 동시에 그녀의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5.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인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 ‘모든 순간이 너였다’를 전면 개정판으로 출간하게 됐다. 아직 준비할 것이 많은 탓에 출간 시기는 꽤 멀리 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야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적잖이 흥분된다. 그 시절의 귀한 마음을 다시금 돌이켜봐야지.


6. 이렇게나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고 베짱이처럼 놀고만 있는데 여전히 나를 기다려 주는 독자들이 있을까. 이 쉼을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모두가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된다고만 해줬지, 언제부터 다시 나아가야 하는지 일러주지 않았다. 꽤 불안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고,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있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언제나 그랬듯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나는 필히 지금보다 배로 씩씩한 사람이 되고야 말 것이다.


7. 예전이었으면 위와 같은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잠겨 죽게끔 했겠지만, 지금은 사랑 하나가 모든 악을 이긴다. 우리 둘은 이토록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삶을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가 빗자루로 못난 마음을 모두 쓸어 담는다. 비로소 사랑이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껴안은 채로 그 멀끔한 사랑의 최초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쁜 것은 모두 비우고 더는 울지 말자며 새끼손가락을 거는 일이다.


8. 나는 이 사람과 영영 부숴지지 않는 사랑을 새끼손가락 강하게 걸고 약속했다. 아주 차갑고도 포근했던 날의 새벽 세시 반에.


9. I firmly believe in etern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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