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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Feb 15. 2022

근황

사랑의 깊은 곳에서

글을  자도 쓰지 않고 생각지 않으며,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도 않고 지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쓰게끔 하는 원동력인 슬픔 따위의 감정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유순한 일상을 사는 탓이다. 이렇게 온전히 쉼을 가질  있는 삶이  달갑고 감사하면서도 전혀 치열하지 않은 물렁한 순간들이 이따금 불안하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명예와 성취만을 필사적으로 좇으며 무던히 애써왔고 그것을 가장 중요시했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탐내지 않고서 그저 내일로 걸음을 내딛는 지루한 일 또한 나름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뤄내고 더 높이 올라가야만 한다는 강박은 줄곧 나를 자멸 속으로 조금씩 떠밀었다. 나는 그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고 언제라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쉬이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자의든 타의든 힘겹게 얻어낸 이 멈춤을 온몸으로 만끽할 것이다. 설령 지금의 이 여유로움이 실은 지질한 게으름이더라도, 이 달콤한 쉼이 비겁한 도피라고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것이다. 훗날 멈춤을 택한 지금의 나를 죽어라 원망하게 된다 한들, 선택이란 늘 그 당시의 나 자신이 고를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최선이 아닌가. 그러는 나는 더없이 여유로운 지금 이 순간에도 한 편으로는 최선을 다한 셈이 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주워 담는 행위의 중심에는 늘 ‘나’를 꼿꼿이 세워두어야 한다. 스스로를 너절히 내팽개쳐두고서 하는 고민과 해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 나는 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언제든 다시 그것에 미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몹시 반짝인다. 나는 사랑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한다. 평생을 약속하고 싶은 이와 마음껏 사랑을 나누며 방탕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언젠가는 다시 몇 날 며칠을 읽고 쓰는 데에만 잔뜩 몰두하게 될 그때의 나도 필히 반짝거리며 빛날 것을 안다.


무엇보다 내가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모두 괜찮을 거라 말해줬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분명 더할 나위 없는 평안이다. 멋진 사랑은 돈이 없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한대도 울창하게 가꿔갈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이다. 나는 누구보다 사랑을 굳게 믿는다. 지금 내 옆에는 엄동설한에도 잠꼬대랍시고 이불을 몽땅 걷어찰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 새근새근 자고 있고, 나는 이 사람을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다. 장담컨대 이 사랑은 이미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숲처럼 울창하다. 이런 사랑의 영향권 속이라면 그 어떤 불안과의 싸움에서도 크게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아끼던 글을 잠시 내려놓고 아주 소중한 사람 한 명과 작고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를 이 삶에 주워 담았다. 우리들은 보폭을 맞춰가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중이다. 서로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 언젠가는 함께 제주에서 예쁜 꽃집을 운영하자는 약속을 되새기면서.


이상하리만큼 춥다는 말이 그리 잦지 않은 이 다정한 겨울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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