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윤이는 이번 겨울방학을 아주 힘겹게 버텨냈다.
학교의 석면 공사로 인해 여름방학이 일주일, 나머지 겨울방학 70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실 작년 여름부터 걱정이었다.
인근지역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에 방학동안 가 있기 위해 일단 하고 있던 몇개의 학원들을 모두 스탑시켰다.
그래도 해야 하는 화상수업들 (영어 화상 수업 주2회)와 온라인 학습프로그램을 위해 친정에 인터넷을 신청할까 했다가 이내 포기한 것은.
아이가 하루종일 넷플릿스나 유튜브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
화상수업은 주말에 집에 와서 하는 것으로 하고 온라인 학습프로그램들도 방학동안 쉬는 것으로 하고
몇가지 교재와 책들을 싸서 보냈다.
그런데 처음 몇번은 할머니와 외출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더니 점차 방에 틀어 박혀서 케이블티비만 본다고 연락이 왔다.
나가자 해도 실내복에서 외출복 갈아입기 귀찮다며 안나가고.
아이는 먹고 싶은 건 할머니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여 이것저것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라보게 볼에 살이 올라왔다. 운동은 안하고 먹고 앉아서 티비보기.
걱정이 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겠다.
결국 한달이 넘어가고 개학이 2주남짓 남은 상태에서 친정엄마는 여기 있는 것 보다 집에 혼자 있는게 차라리 나을 거 같다는 얘기를 하셨고, 본인에게도 물어보니 그럴 수 있다고 해서 데려왔다.
일찍 출근하면서 간단히 아침을 주고 점심은 만들어 줄 때도 있고 아빠가 근처에서 일하기 때문에 잠깐 나와서 챙겨 줄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친구네 집에 신세를 지었다.
가끔 점심을 배달 시켜서 그집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하루이틀 넘기고, 혼자서 브리또를 전자렌지에 돌려 먹기도 하며...그저 '버티었다' 라고 밖에.
그러면서 이제야 현타가 왔다.
앞으로의 방학들은 그럼 어쩌지?
학교에서의 돌봄은 1,2학년까지이다. 돌봄이 되면 방학때 점심이라도 먹고 올 수 있지만 3학년 이상은 돌봄의 대상이 안된다.
앞으로 이 아이는 내가 집에 있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고 방학의 점심은 뭔가 좀 부실하게 먹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블로그에 "워킹맘 방학 점심" 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밥을 싸 놓고 가는 엄마, 보온도시락에 국을 담아 놓고 가는 엄마.
몇번 도시락 배달을 해 보았으나 금새 질렸고, 배달 반찬들도 그러하다고.
앞선 경험이 있는 두 동서들에게 물어보니 거의 냉동식품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집에 있다고 해도 음식을 짜잔 하고 내놓는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간식은 좀 챙겨줬는데
아이는 깍아 놓은 과일은 손도 안대고, 귤을 깍아 먹지도 않고 가끔 냉장고에 있는 유제품들만 먹을 뿐.
마음이 몹시 씁쓸하다.
학군지에서는 아이들이 저녁때 학원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컵라면, 컵밥 같은 걸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이러나 저러나 아이들 식사는 엉망인 셈이다.
그러던 차에 근처 모 초등학교에서는 방학 때에도 점심을 신청하면 먹으러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꼭 맞벌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급식을 먹을 수만 있게 해주면 안심이다.
아이를 왜 안 낳는지 절절히 그 육아의 힘듬을 절절히 느끼고 있지만
사실 나의 경우는 이번 방학 만큼 심적으로 불편했던 적이 없었다.
이 일이 앞으로 쭈욱 이어지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출산율을위한 정책도 좋지만 다른데 돈 쓰지 말고 학교 급식을 조건 없이 원하는 사람들 방학 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만 하더라도 부모들의 육아 걱정을 크게 덜어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던 중 옆아파트에서 하는 돌봄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자리가 났다고.
매일 학교가 끝나고 2시간정도 그곳에서 간식 먹고 간단한 돌봄 프로그램도 하면서 지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방학에 급식을 준단다!!
그것만으로도 등록을 안할 이유가 없어진다.
챙겨서 내야 할 서류가 꽤 많았고, 맞벌이나 그 밖에 가정에서 돌봄이 힘든 여러 케이스의 조건들이 붙긴 했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애들 모아놓고 방치하는 돌봄은 아니며, 6학년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낼지 걱정이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부디 좋은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또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혜택들을 나처럼 곤경에 빠진 많은 학부모들이 걱정 없이 사용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정말정말 한시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