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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지기 이올 Aug 20. 2022

버터향이 가득한 책방 이올시다

책방 이올시다에 오는 사람들

 책방을 시작하고부터 무릎 통증이 생겼다. 쪼그려 책을 둘 때마다 무릎에선 전기가 통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정형외과와 내과에서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말만 들었다. 밤마다 열을 뿜어대는 무릎 때문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답답함에 정신적 피로감도 쌓여갔다. 


 오전에 한의원 들렸다 파스를 붙이고 출근하는 날이 계속 됐고, 서늘한 냄새를 들킬까 다리를 꽁꽁 숨기고 일했다. 계속되는 장마 소식에 하늘까지 어둡고 내 맘도 어둡고, 그렇게 축축 쳐져가던 시기에 파스 냄새 가득하던 책방을 한 순간에 포근한 베이커리 향으로 감싸준 사람들이 있다. 



퇴사 기념으로 책을 사 가던 귀여운 '퇴사자'*. 그 마음을 응원하고 싶어 김언수의 소설 <캐비닛>을 빌려줬었다. 숨겨진 진실을 담고 있는 캐비닛 13호 안에는 기이하고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캐비닛을 관리하는 직장인 화자에겐 그저 속 시끄러운 업무일 뿐이겠지만, 독자에겐 나무 손가락에 살이 붙고 육체화 되어가는 아저씨,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임신하는 심토머의 이야기는 그저 흥미로울 수밖에. 이 자극적이고 강렬한 책이라면 '퇴사자'가 모든 걸 잠시 잊고 책 속에 빠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책을 반납하러 온 '퇴사자'는 속이 울렁거렸고, 많은 분량을 순식간에 읽었을 만큼 재밌었다는 생생한 후기를 전했다. 같은 책을 읽고 함께 키득거릴 수 있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는데, '퇴사자'는 또 다른 책을 한 권 사가면서 맛있는 스콘이 담긴 봉투까지 건넸다.

                                                                                                             *책방 이올시다 닉네임  


'지윤'*은 늘 유영하듯 책방에 있는 책을 살핀다. 그가 책방에 오면 덩달아 나까지 잔잔한 바다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지윤이 등장하면 괜시리 평안을 얻었다. 그가 처음으로 사간 책은 니나 프루덴버거의 <예술가의 서재>다. '아무도 안 사가면 내가 가져가야지.', 사실은 '그냥 내가 갖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입고했었다. 예술가 서른 두 명의 서재를 담고 있는데, 그들의 서재 자체가 예술이다. 읽다보면 서재가 있는 집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마음껏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알아봐준 사람이 나타나서 참 좋았고, 그런 그가 종종 와주기를 바랐다. 그런 내 맘을 알아준건지, 그는 세번 째 책을 사던 날에 책방 이올시다가 망원동 산책 코스가 되었다는 말과 고소하고 맛있는 귀여운 쿠키를 살포시 내게 건네줬다.


                                        *책방 이올시다 닉네임


최단 시간 재방문 신기록을 세운 '용'*. 그는 한 달여 만에 갖게 된 반쪽짜리 휴무 날 마지막 방문자였다. 그날은 덜컥 당첨된 최애 가수 무료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와줬던 날도 휴무 없이 매일 오픈했는데, 최애 가수 공연 당첨 소식에 반차 휴무를 내다니. 최애 가수는 화려한 조명을 감쌌겠지만, 나는 죄책감을 휘감고 있었다. 천천히 한 권씩 꺼내 살피는 용의 신중함이 조금 더 오래 책방에 머물기를 바랐지만, 공연 매표 시간이 정해져 있어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히려 내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고 나의 죄책감은 몸짓을 불렸다.



 다음 날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는 실감과 미처 떨쳐내지 못한 어제의 죄책감을 안고 자리에 앉았는데, 용이 들어왔다. 그는 다시금 천천히 책을 들여다보더니, <비릿 be:lit vol.3>을 골랐다. 반년간 문학잡지인 비릿은 한국문학 안에서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작가를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과 인터뷰를 소개한다. 그의 세심한 안목에 감탄했다. 내일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만으로도, 고른 작품이 비릿이라는 것만으로도, 그가 참 고맙고 감동적이었는데.. 책을 받아들고는 귀엽게 포장된 초코쿠키와 소금빵까지 건넸다.


 *책방 이올시다 닉네임






 '금자씨'*는 가오픈 기간부터 방문한 꾸준한 고객이다. 그는 선물하기 딱 좋다며 미니미니북을 좋아했다. 미니미니북은 세계문학을 주머니에 쏙 들어갈만큼 작은 사이즈로 출간해 간편하게 책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딱이다. 물론, 읽지 않고 소장만해도 귀여운 책이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그 단어와 어울리는 사진을 올려 책방을 홍보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그가 당첨됐다. 이미 이벤트 당첨 전에 개인 SNS에 책방을 홍보해주었던 그였기에, 당첨됐다는 걸 알았을 때 이렇게나마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무진장 기뻤다. '바로 안드실 것 같아서 냉동실에 넣어뒀다 먹어도 맛있는 걸로 했어요.' 쿨하고 멋진 말. 그는 오래 대화나누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이벤트 당첨 3만원 이용권으로 결제를 마치자마자 가방에서 빵을 꺼내며 저런 따수운 말을 건넸다. 


                                      *책방 이올시다 닉네임




아니,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들이 책방 이올시다에 와준다는 것. 
이건 뭐 감동 받아 기절하라는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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