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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지기 이올 May 03. 2023

북클럽:나들이


내 마음에 나를 들이는 시간, 나를 찾아 떠나는 나들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한동안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하루를 해치우듯 살다보니 얼마나 걸어왔는지, 어딜 향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책방에 오도카니 앉아있다 보면 나를 향한 질문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몸짓을 불렸다. 그러다 어쩌면 나같은 사람이 어딘가 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았다. 그렇게 내 마음에 나를 들이는 시간, 나를 찾아 떠나는 북클럽 ‘나들이’가 시작됐다. 우리는 불리고 싶은 닉네임을 알려주고 서로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을 테니 굳이 이름이나 나이, 직업을 앞세워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진짜 나를 찾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했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규영의 『희망을 버려요』로 꿈꾸고 바랐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식도 깊숙이 손을 넣어 뱉어낸 판도라 상자 속 오래된 희망들을 하나씩 버린 귤씨처럼, 우리도 각자의 묵은 희망을 소개하고 털갈이하듯 털어냈다. 그렇다고 모든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근처 시장에서 사 온 귤을 일 인당 두 개씩 나눠가지고, 그중 하나에는 아직 버릴 수 없어 냉장고에 조금 더 넣어두고 싶은 희망을, 또 다른 하나에는 빈자리에 들어올 새로운 희망을 새겨넣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꼭꼭 씹어 먹어 소화했고, 어떤 이는 소중하게 집으로 가져갔다. 한 멤버는 작은 쓰레기통을 보여주며 앞으로 묵은 희망을 주기적으로 비울 거라고 했다. 다른 멤버들도 마음에 드는 쓰레기통을 장만해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왼쪽(오프라인 모임) / 오른쪽(온라인 모임. 책방지기 이올이 대신 작성)

 두 번째 모임에서는 김찬호의 『모멸감』으로 한국 사회에서 존엄을 지키며 생존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모멸감’을 저마다의 해석으로 다시 정의했다. 그중 ‘작은 힘으로 나와 당신을 무너뜨리기 쉬운 것’이라고 했던 멤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타인에게 받은 모멸감, 사회 구조로 인한 모멸감, 내가 타인에게 준 모멸감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다보니, 말 그대로 아주 작은 힘으로 우리는 참 많이 무너졌었다. 무엇 때문에 그 감정을 그토록 주고 받았을까. 우리는 역지사지로 부족하니 ‘역지감지’하며 모멸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며 반성할 수 밖에 없었다.

 『모멸감』의 표지를 한 걸음 멀리서 보면 시무룩하게 입꼬리를 내린 사람과 비열하게 웃고 있는 듯한 사람의 표정이 보인다. 혼자 읽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며, 가지고 있던 책을 앞뒤로 돌려가며 한참이나 둘러보던 멤버도 있었다. 표지를 비롯해 책 속, 유주환 작곡가의 음악과 여러 작가의 그림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그중 오귀스트 로댕의 「대성당」을 패러디하며,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손 모양을 만들며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서로의 손을 내밀어 마음을 모으면 우리의 존재는 더 높은 세계로 고양된다는 그 뜻을 오래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왼쪽(오프라인 모임) 오른쪽(온라인 모임)

세 번째 시간에는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속 태희를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기 모습을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기억을 되살려보는 시간에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과거에 만났던 어른을 떠올릴 때는 주로 속상했던 일을 꺼냈는데, 서로의 편이 되어 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을 살핀 후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끔찍합니다.”라는 문장의 ‘그런 사람’을 빈칸으로 바꿔 채워보았다. 우리는 확신하는, 냉소적인, 비겁한, 미루고 미루다 미련해져 버린, 양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각자 빈칸을 채운 다음에는 문장을 소리 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그 정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정답은 지문 속에 있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지문 대신 시간, 실수, 침묵을 채워 넣던 태희처럼, 우리도 정답을 찾아 넣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소제목이 -, +, ÷ 로 되어있는데, 작가가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저마다의 해석에 따라 작품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도 참 재밌었다. 또 아티스트 박민준의 마트료시카 그림 표지와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마트료시카처럼 나는 계속 나일 뿐이지”라는 문장도 연결지어 살펴봤다. 소설을 읽을 때는 허무하게 읽혔던 문장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읽었을 때는 달리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왼쪽(오프라인 모임) 오른쪽(온라인 모임)

 마지막 모임에서는 김규림, 이승희의 『일놀놀일』을 읽고 자신을 지키는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자신을 브랜딩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들은 왜 재미가 인생의 가치가 되면 안 될까, 왜 우리 나이가 되면 장래 희망을 묻지 않을까 생각하며 일과 놀이와 관련된 25개의 단어를 뽑았다. 우리는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재택근무, 덕질, 시간 등 저자의 단어를 빌려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곤 어떻게 하면 일과 공생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공유했다. 저자들처럼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부터 마감 정하기, 의미와 가치 찾기, 출퇴근 시간 활용하기, 새로운 도전하기 등  각자 하나씩 이야기했을 뿐인데 일과 공생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알게 되었다. 

 또 작품을 읽고 공감했던 부분을 기반으로 각자 질문 하나씩을 만들어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만의 리추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은? 하나같이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함께 찾아냈다. 

저자 이승희는 회사의 소속을 바꿀 때마다 자신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소개가 전부 바뀌어버린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남들이 불러주는 나 대신 내가 부르고 싶은 나로 채운 표현을 선택했다. 우리도 북클럽 나들이를 마치며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향으로 이름 앞에 달 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는 사람, 누구입니다” 하고 마무리 인사를 나눴다. 북클럽 나들이는 오프라인 버전과 온라인 버전으로 총 열두 분과 함께했는데, 발견하는 사람, 귀여운 겁쟁이, 버둥거리며 성장하는 사람, 일하며 공부하는 사람 등 그들의 소개 멘트를 듣는 내내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아! 이제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나들이가 시작됐구나!

왼쪽(오프라인 모임) 오른쪽(온라인 모임)



+ 책방 이올시다의 북클럽 나들이 1기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 (사)행복한아침독서가 우리나라 책 문화 활성화를 위해 발간하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의 2023년 5월호에서 해당 글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꼭지명: 동네3면_책친구, 독서모임 3  북클럽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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