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찐 옥수수와 색 바랜 종이를 들고 오신 단골손님 김동열 씨.
그의 요청사항은 책상 유리 밑에 넣어둘 종이 속 글귀가 잘 보이도록 업그레이드 해줄 것, 휴대폰으로 한자를 쓰고 싶으니 키보드의 한자 기능을 찾아줄 것이었어요. 옥수수 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아서 냉큼 해드린다고 하고 휴대폰부터 받았어요.
우선 잘못 다운받으신 어플부터 정리하고 있는데, "그 휴대폰이 뭐 좀 이상하지 않아요? 지금까지랑 좀 다르지 않나?"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씀인가 싶어서 휴대폰을 살펴보니, 겁나 멋진 갤럭시 플립으로 바꾸셨더라구요! 숨겨진 세 번째 요청사항, '새 휴대폰이 멋지다고 해줄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어요. 힌트를 주신만큼 더 열렬하게 감탄했답니다.
사실 반으로 접히는 휴대폰보다 더 멋졌던 건, 꼬깃꼬깃 접어온 종이 속 글귀였어요. 당신께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여기저기서 베낀 거라고, 자기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 멀었다고 하셨지만, 좋은 문장을 발견하는 것 또한 무진장 멋진 능력이잖아요! 한 글자씩 따라 읽다 보니, 저만 알기 아까운 글이네요.
<행동의 목표>
1. 자립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위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1.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2.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나 아닌 것이 없다. 그리고 나 아닌 상대가 없다.
-나는 땅에서 태어났고 땅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땅 위에 있다.
땅이 내 안에 있다.
어제 정치색이 다른 친구와 술 한잔하다가 싸우셨다고 고백하시길래, "세상에 똑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있으면, 그게 더 무서운 세상이에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화내셨어요?" 물었어요.
"응. 맞아 맞아. 똑같으면 안 되지." 라며 고개를 푹 숙이시길래, "미안하다고는 하셨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그럼. 오늘 바로, 내가 그랬으면 안 됐다... 그랬지.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친구분이 뭐라셨어요?"
"아, 뭘.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대. 허허"
사실 휴대폰 키보드 한자 기능이 잘 되나 확인해보려고 들어간 문자함에서 아직 읽지 않아 맨 위에 떠 있던 메시지를 슬쩍 봤거든요.
'친구끼리. 그럴 수. 괜찮.'
아, 아까 그 메시지가 그런 거구나 싶어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어요. 그럼요. 그럴 수도 있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무서운 세상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이 김동열 씨 같으면 좋겠어요. 우선 저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