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곤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방 문을 열던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리는 거였다. 물이 끓는 동안 조명 스위치를 하나하나 켜고 리듬감 있는 음악을 틀었다. 테이블에 텀블러를 올리고 드립백 하나를 뜯어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한 잔 가득 커피가 만들어지고 텀블러를 양손으로 감싸 쥐어 온기를 느꼈다. 이렇게 상황을 나열하니 어딘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계속되는 야근에 지친 상태라 그저 살기 위한 생명수를 찾았을 뿐이었다.
그때 내 시선을 끈 건 따뜻한 김이 만든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식히는 동안 오른팔을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쉬던 차였다. 저 커피 마시고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텀블러 위로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손님을 맞이하려고 켜둔 조명과 음악이 커피와 만나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책방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쓸데없이 예쁘네. 구시렁거리며 그 순간을 영상으로 남겼다.
만약 피로가 축적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음악이 없었다면, 조명을 켜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저 뜨거워서 먹기 어려웠던 커피 한 잔이 오래 축적된 피로, 리듬감 넘치는 음악, 포근한 느낌의 조명, 뜨거워진 텀블러, 그 위로 올라오는 뽀얀 김이 만든 다채로운 감각의 컬래버로 나를 위로하는 커피 한 잔이 되었다. 감각이 너무 과하면 무엇도 제대로 느낄 수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커피 추출기의 소음이 날카로울수록 커피의 쓴맛을 더 인식하고, 자동차 문을 닫을 때 적절한 소리가 나야지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찰스 스펜스는 '일상 감각 연구소'를 통해 우리의 감각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서 다중감각 인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 핵심 규칙을 이해하고, 다중감각 신호와 환경을 최적화해서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수많은 기업이 오랜 시간 이러한 사람의 감각을 해킹하여 상품을 판매한 것처럼, 자기 감각을 스스로 해킹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방법까지 안내한다.
이 책의 목차는 일상의 감각들, 집, 정원, 침실, 출퇴근, 직장, 쇼핑, 헬스케어, 운동과 스포츠, 데이트, 감각의 미래로 이어지는데, 순서에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와 주변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감각을 인지하고, 이를 정서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영감을 얻게 된다. 작가는 센스 있게 책의 끝부분에 그동안 설명했던 센스(sense) 해킹 방법을 정리해 두었는데, 이 부분을 먼저 읽고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 읽는 방법도 추천한다.
감각을 인지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자 똑같은 일상이었던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커피 한 잔에 위로받았던 그날처럼,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순간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가을 북클럽 첫 시간에 이 책을 읽기로 했다. 휴대폰 화면 위로 엄지를 몇 번 움직이면 타인의 일상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보다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이 책이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던 나처럼, 북클럽 멤버들도 이 책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족스러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해당 글은 한국일보 <책방지기의 서가> 코너에서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