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있어?

1인 자영업자들의 통화

by 이올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합니다.’


누군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글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어디선가 급하게 찾은 듯한 사진, 그 위에 적어둔 문구. 이 사람은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른 퇴근을 했을까? 무엇보다 재료를 소진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저런 쪽지를 붙이고 퇴근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잠시 상상도 해봤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서랍 안에 넣어둔 재고들까지 모두 다 팔리고, 텅 비어 있는 책방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니 세상에, 오늘 뭔 날인가? 왜 이렇게 다들 책을 사 가는 거지? 요즘 책 읽는 게 힙한 문화라더니, 진짜 유행은 유행인가 보네. 뭐 그런 말들을 구시렁거리면서 바닥을 쓸고 있으려나. 이왕 책장이 텅 빈 김에 책장도 구석구석 닦아야지. 그러다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세상 큰 죄를 지은 듯한 표정으로, 죄송해요. 오늘은 남아있는 책이 없어서요. 원하시면 주문하고 내일 찾아가실 순 있어요. 같은 말도 하려나. 있던 책이 다 빠지고 나면 제일 먼저 어떤 책을 입고해야 하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건 복권 당첨되면 뭐부터 사야 하나 같은 고민이랑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어휴, 있는 책이나 잘 팔아야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책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신기하게도 책은 자기를 뽐낼 수 있는 위치가 따로 있는 듯하다. 같은 곳에 꽂아두더라도 어떤 책은 잘 팔리고, 어떤 책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렇게 제 짝꿍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책장에 머무는 책은 위치를 바꿔준다. 그럼 또 신기하게 그 책에 손을 뻗어 가져가는 이가 나타난다. 8평 정도 되는 공간이라서 웬만하면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제 자리에 머무는 책은 유독 더 눈에 띈다.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 닫는다는 공지를 하는 그날까지 요리조리 책 위치를 바꿔가며 파는 수밖에 없겠다.


괜히 헛헛한 마음이 들어 나처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나보다 일 년 먼저 꽃집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다.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더니 “미진, 그거 진짜 재료 소진 아닐 수도 있어. 오늘은 도저히 가게에 못 있겠다, 이러다 사람 죽겠다 싶어서 재료 소진 붙여두고 뛰쳐나간 걸지도 몰라. 우리 오늘 손님 너무 없다 싶으면 컵라면 물이나 올리자.”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자영업 선배님의 날카로운 시선이랄까.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밥 먹을 타이밍을 놓칠 때가 많다. 손님이 한참 없어서 이제 뭐라도 하나 먹어볼까 싶으면 꼭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실 밥보다 손님이 중요해서 배고픈 건 중요하지 않은데, 혹시나 음식 냄새가 나서 불편하시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후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래, 왜 이렇게 손님이 없을까 싶은 날엔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기로 다짐한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자영업자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그 친구는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예약이 없는 시간이 생기면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전화를 받았다는 건 손님이 없다는 뜻인 걸 알면서도, 늘 “손님 있어?”가 첫인사다. 있겠냐.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서 오세요.” 하면 눈인사를 하고 얼른 통화를 끊는다. 처음에는 손님이 오셔서 급하게 끊었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요즘엔 자연스럽게 그런 문자도 하지 않게 됐다. 예전에 어떤 식당에 갈 때마다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사장님을 보고, 가게에 올 때마다 전화하고 계시네 의아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할 때도 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면서 좁은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서로를 위로하는 자영업자들의 끈끈한 의기투합이랄까.


마케팅 홍보 방법은 나 빼고 다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 같을 때,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가도 재정 문제나 일정 문제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될 때, 나와 비슷한 사정으로 운영하던 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 쉬지 않고 나열할 수 있을 만큼 감정이 소진되는 이유는 날마다 다양하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마음의 여력이 없는 날이 있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사장도 나고 직원도 나다. 엄격한 사장과 성실한 직원이 한 몸에 있는 나 같은 경우에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속상한 것도 나지만, 그런 나를 달래주고 다시 일할 수 있게 북돋아 주는 것도 나여야 하니까.


독서, 꽃, 미용. 누군가에게 소중한 휴식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우리는, 모순되게 자기 휴식을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나 홀로 자영업 동료인 우리는 서로 마음이 문드러지지 않도록, 일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도록 상기 시켜주는 막중한 임무를 가졌다. 텍스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꽃다발 만드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섬세한 과정에서 여러 빛깔의 꽃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반대로 꽃을 잡다 지친 언니는 타닥타닥 타자를 치며 일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손님들의 머리를 말리던 수건을 넣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전화를 걸어온 친구가 요즘 거리에 사람이 다니냐고 묻는다. 자기는 울산에 있고, 난 서울에 있는데도 손님이 없는 날엔 서로 그렇게 묻는다. “날씨가 추워서 그래.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다닐 수가 없어.” 우리 답은 늘 정해져 있다. 추울 땐 추워서, 더울 땐 더워서, 날이 좋을 땐 좋아서 손님이 없다. 아무 말 없이 서로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뻔한 말을 주고받는 시간은 우리가 궁둥이 붙이고 가게에 있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혼자 일하다 보면 재료보다 감정이 먼저 소진되는 날이 많다. 괜찮다. 그런 날이 오면 우린 또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 있어? 물으면 되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커피가 만든 아지랑이는 따뜻한 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