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아끼는 책을 더 이상 팔 수 없게 된 건 영원한 슬픔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절판, 끊을 절(絕) 자에 판목 판(絕). 풀어쓰면 책이 끊겼다는 뜻인데, ‘절판’하고 소리내 읽을 때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끈을 놓쳐버린 책의 아찔한 표정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 속 그 표정은 책을 입고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더 이상 주문할 수 없단 걸 알게 된 내 표정과 닮아있다.
책방지기가 된다면 가장 먼저 입고하겠다고 정해둔 책이 있었다. 키팅 미미 놀랜드의 『포옹할까요』인데, 초등학생일 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 하늘천따지에서 샀던 책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곳에 꽂혀있었는지 꺼낼 때부터 책등이 바래있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귀한 책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겨워 책장을 무척 조심스럽게 넘겼던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가 서로를 안아야 하는 이유, 포옹할 때 지켜야 할 예절, 숙련자를 위한 업그레이드 포옹 요법을 귀여운 곰돌이 그림이 설명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폭 안기고 싶은 날이 오면 그 책에 기댈 수 있을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방에 오는 이들도 그 책의 품에 안겨 위안받길 원했다. 책방을 열겠다고 다짐하고, 입고하고 싶은 책으로 가장 먼저 이 책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포옹할까요』 의 입고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책이 출간된 지 이십 년이나 흐른 뒤였고, 책을 만든 출판사를 찾을 수 조차 없었다. 책방을 열기도 전에 절판의 좌절을 겪은 셈이다. 아쉬운 마음에 소장하고 있던 『포옹할까요』를 전시해 두기로 했다. 아끼는 책이 망가지면 어쩌나 고민도 했지만, 집 책장에 꽂아두는 것보다 책방에 두는 게 훨씬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책방 문을 열었던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 책을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여전히 전시하고 있는데, 가끔 안내문보다 책을 먼저 읽은 손님께서 사겠다며 가져오실 때가 있다. 그럴 땐 절판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마음이 앞서서 이올시다에서는 살 수 없지만 중고서점 쪽으로 알아보면 구할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 사고 싶어질 만한 다른 책으로 안내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하다니, 그럴 때 마다 책 팔아서 월세 내기는 글렀다 싶어서 아차 한다.
책방을 연 지 이 년째가 되었을 때, 아끼는 책이 또 절판됐다. 김수정 작가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인데, 책방에서 꾸준하게 팔리던 책이라 여느 때처럼 추가 입고를 하려다가 절판 소식을 알게 됐다. 다급하게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지만 팔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고교 시절, 선생님 몰래 꺼내 읽을 요량으로 샀던 책이었다. 결국 담임 선생님께 들켰는데, 혼내기는커녕 재밌어 보인다고 책을 빌려달라고 하셔서 선물로 드리고 다시 책을 샀던 기억도 있다. 독서학을 전공하고, 독서 강사로 활동하고, 책방지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책을 읽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진로를 고민했던 시기에 운명처럼 만난 책이었다.
“남을 이해하는 건 사실 별게 아니잖아요.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고, 이해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폭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책의 핵심 개념인 ‘리빙 라이브러리’의 창시자 로니 에버겔이 남긴 말이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살아있는 도서관이란 뜻으로, 책 대신 사람책을 대출하는 걸 말한다. 사람책을 대출한 독자는 그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다. 도서 목록에 있는 사람책들은 남들과 약간 다른 독특한 이력 덕분에 오해의 시선을 받아온 사람이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 등 다양한 용어로 여러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사람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게 놀라운 충격을 안겨준 책이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 덕분에 한 사람을 책처럼, 한 권의 책을 사람처럼 대할 수 있게 됐다. 손님께 이 책을 소개할 때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으니, 여러 사람책의 인터뷰가 실린 이 책을 사는 건 여러 권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었다. 게다가 읽고 나면 자신은 어떤 사람책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책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워서 직접 사람책이 되어 책 목록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좋아하는 책을 파는 기쁨을 알려주었던 책이 절판되었다니,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전시해 둔 두 권의 책 옆에 절판이라는 문구를 적어두었음에도, 여전히 “이 책은 살 수 없는 거죠?”라고 물어오는 손님들이 있다. 알면서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알기에 살 수 없다는 말 대신 “참 좋죠. 저도 더는 새 책을 구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살 수 있는,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처럼, 언제 어떻게 절판될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