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추억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_ 실뱅 쇼메_2013
2016. 03. 08
주의) 결말에 대한 언급으로 스포 있음.
기억과 추억은 사전적 의미에서 분명한 경계가 있다. 추억은 우리가 기억하는 지난 일들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인데 대부분이 아련하고 그리워하는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을 말하지만, 좋은 일이든지 그 반대이든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을 되살려 생각해 내는 현상은 기억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의 기억과 추억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프루스트가 폴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전에 이렇게 표현했다.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속 깊숙이 숨어있단다. 연못의 수면이라고 치면 캄캄하고 평평해서 아무것도 안 사는 것 같지. 네가 낚시꾼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할 만한 미끼를 던져야 해. 그러면 수면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일 거야. 그럼 낚싯줄을 던져서 쨘! 이런 걸 낚는 거야. 곤들 매기 말고 추억을. 추억을 낚아 올릴 미끼로 뭐가 좋을까? 추억은 음악을 좋아하지. 물고기 밥은 준비됐고 이제 낚아 올릴 도구가 있어야겠지? 이게 낚싯바늘 역할을 할 거야. 보통 마들렌이야. 낚싯바늘은 차(tea)에 있어.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시도해 볼만 하지. ”
폴은 차를 마신 후에 자신이 잊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그 차가 무엇이었든 간에, 폴이 끄집어낸 기억을 보면서 사실에 입각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영화 끝에 이모들로 인해 폴이 기억한 부모의 죽음이 명확해졌지만 그전까지는 폴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 자의적인 해석에 입각한 또 다른 기억인지 불분명한 묘사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폴이 생각하고 있던 기억과 추억의 남은 파편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가면서, 오히려 덫에 걸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분명한 경계가 있는 추억과 기억도 자의적으로 의식이 조작될 수 있으니 말이다. 추억이던 기억이던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작이 될 수도 있고, 편린의 조각으로 끝날 수 있는 부분도 어느 시점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면 한 조각의 비늘이 아닌 큰 물고기로 기억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만 보듯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리고 감독은 추억과 기억에 대해 생각하게 하면서, 음악이라는 소재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기억을 낚아 올릴 미끼의 종류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스토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로 시작해 피아노로 끝난다. (물론 폴이 우쿨렐레 레슨을 하는 걸로 끝나지만. - 스포) 그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연결고리는 피아노와 음악이었다. 연못 수면, 낚시꾼, 미끼 등의 표현은 좋지만 주인공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너무 음악에 얽매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을 끄집어내는 장치가 음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대체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뒤에서 말할 폴의 부모의 죽음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적지만, 최면과 심리치료 관련 영화에 한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평에는 동의하지만 그건 영화를 본 후의 옵션일 뿐이지 전개 부분에 있어서는 폴이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먹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느낌이 강렬했다.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마르셀 프루스트, 홍차, 마들렌이 떠오르게 했지만 기억을 찾아내는 장치가 음악만 추가됨에 따라 그저 소설을 조금 각색했을 뿐 음악에 맞추다 보니 전개 부분에 있어 억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본 한 친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110분 만에 끝낸 것 같다고도 했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음악과 피아노라는 소재로 일관성을 갖게했지만 부모의 죽음까지도 피아노와 연결시켜 놓는 전개는 충격이었기때문이다. 너무 일관성 있다 못해 산으로 간 듯한 느낌이었다. 폴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피아노를 이용하여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지 않는 이유를 말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굳이 피아노에 깔려 죽는 부모의 죽음이라는 전개는 많이 황당했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진 피아노에 깔려 죽다니.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없는 듯한 황당한 전개는 놀람도 잠시 헛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이 아이의 기억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만큼 다른 걸 원했다. 폴이 기억하는 아빠는 난폭하고 사나운 모습이 아니라는 걸 표현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지만 전개 부분에 있어서 죽음의 장치는 가장 큰 아쉬운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즉 음악, 피아노, 연못 수면, 낚시꾼, 미끼, 마르셀 프루스트, 홍차 그리고 마들렌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오마쥬 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제대로 안읽은 상태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화로만 봤을 때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 영화 감독과 마담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인 듯 하다.
영화 총 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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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outp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