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yersdale
오늘 탄 거리: 103km (Connellsville ~ Meyersdale)
총 이동 거리: 5188km
밤 사이 비가 오는 바람에 텐트 안에 습기가 장난이 아니다. 무엇보다 생각 없이 신발을 밖에다 내놓아서 신었더니 축축. 이쯤 되면 그런 아마추어스러운 실수를 하지 않을 법도 한데 피곤하면 그냥 텐트 안에 들어가 버리는게 본능이 되버렸다.
그렇게 축축한 신발을 신고 출발. 그래도 비온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길은 그리 젖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한 시간 정도 갔나, 아침을 먹기 위해 도로에서 꺾으려고 하는데 며칠전 피츠버그 좀 전에서 만난 Markus가 보였나. 신나서 Markus의 이름을 불렀고 엄청 반갑게 서로를 맞이했다.
Markus는 마침 출발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아침을 먹었지만 내가 먹는다고 하니 또 먹겠다고 한다. 그렇게 맥도날드에 가서 같이 아침을 먹으며 서로 지난 며칠간 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Markus도 내가 어제 총이나 칼을 맞고 털릴줄 알던 Mckeesport에 갔었는데 자기도 무서워서 바로 유턴했다고 말했다. 역시 나만 이상하다고 느낀게 아니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쉴새없이 수다를 떨면서 한 50km 정도를 간 것 같다.
Markus는 보통 하루에 35km 정도 간다고 하는데 나랑 페이스를 맞추다 보니 50km를 세 시간도 안 되서 왔다. 결국 나중엔 힘들다고 자기는 여기서 자겠다고 말했다.(자기도 어렸을 때는 나처럼 하루에 100km씩 달렸다고...) 그렇게 서로 뉴욕에서 보기로 하고 작별인사. 그래봤자 이제 다음주일거다.
한 80km 지점에 있는 Rockwood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등산객/자전거 여행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이라 그들에 대한 배려가 넘친다. 일단 가격도 착하고 자전거룰 안에다 세울 수 있게 해주고 펌프 등도 제공한다. 한국 4대강 종주길에 있는 마을들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는데 다시 사타구니가 쓸리는 느낌이... 이렇게 자주 쓸리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바지가 문제인듯 싶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아 새로 사기도 아까우니 그냥 타려고 한다. 어쨋튼 일단 지금은 아프니 Meyersdale이라는 마을에서 묵기로.
여기는 호스텔이 있는데, 일요일이라 손님이 전혀 없어 도미토리를 독방으로 쓸 수 있었다. 동네를 구경하러 씻고 나왔지만 열은 집이 없어서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사먹고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돌아오니 어떤 할아버지께서 말을 건다. 아마 다른 손님이 없는 호스텔이라 무척이나 심심하셨나 보다. Roger이라는 할아버지였는데,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유럽 및 일본에서 학자 및 인권 운동가로 일하셨다고. 지금은 Liestoppers라는 억울한 피고인들을 구제해주는 운동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Liestoppers는 미국에서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의 판정을 뒤엎었다고 한다. 듀크대 라크로스(스포츠 종목이다) 팀이 한 스트리퍼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전국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사실상 범인으로 몰려간 사건인데, 중국 북경에서까지 듀크대 학생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정도라고. 그런데 Liestoppers에서 이 사건을 파헤치고 결국 피고인들이 무죄인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설명해주었다. 한 마디로 법정에서 판결을 내기 위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범죄가 발생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범죄자로 몰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이 세상에 완벽한 사법 시스템은 없겠지만 그 중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고 있는 미국의 시스템이 그런 문제가 잦다니 좀 충격적이었다. 99명의 범죄자를 잡으면서 1명의 무고한 시민이 덩달아 유죄판결을 받는 게 맞는지, 무고한 시민의 희생은 없지만 동시에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할게 많아진다.
덕분에 오랜만에 머리를 굴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