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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angful Feb 15. 2017

처음 해 보는 것들, 혼자 간 여행 4

런던 2015.12.19

Day 4


첫 번째 맑은 하늘

유럽의 겨울은 아침이 짧으므로 아낌없이 아침 햇빛을 쬐었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혼자 온 여행자 둘은 오늘도 동행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해리포터의 3/4 플랫폼

셜록홈스의 집

피시 앤 칩스 먹기

축구 중계하는 스포츠 펍에 가서 경기 보며 맥주 먹기


오늘은 남들 오면 다 해보는 것들을 하는 날이다.


지도 보고 걷느라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대화할 상대가 있고

혼자 밥 먹지 않아도 되어

그땐 별 생각이 없이 잘 따라다녔는데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여행에서 [당연하게, 필수로, 꼭]은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내 것이 아니니 인상적이었던 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순위권 안에 드는 맛집이라는 엄청 유명한 The rock and sole plaice

역시나 튀긴 조리법 그대로의 예상되는 맛


꼭 피클을 추가 주문하고

에일 맥주와 함께 먹는다.

길가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쭉 빨아들인다.

빨간 버스를 타고 빨간 건물과 빨간 공중전화를 누볐다.

스포츠 펍에서 틀어주는 채널이 한정되어 있어

빅경기가 아니거나 이 지역 리그가 아니라면 보고 싶은 경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잠시 목 축이며 기분만 낸다.

이틀이 조금 안되게 함께 다녔다.

의도하지 않았던 계기로 나의 동행인과 관계를 정의 내려야 했다.


'아무 사이'가 아니면 공유할 수 있는 아무런 시간이 없었어야 했는데

아무 사이가 아님에도 서로에게 같은 시간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동행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이 관계의 범주에 포함되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연을 보기 전처럼 관계와 시간을 0으로 수렴해야 했다.


시간을 즐겁게 잘 보내는 것과 깔끔하게 끝맺음을 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구나.

'유종의 미'란 말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Mark Rothko paintings as part of the Making Traces exhibit at the Tate Modern, November 2015

저녁 식사를 끝내고 혼자 테이트 모던에 갔다.

참 피곤하게도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하루 종일 걷느라 다리도 좀 아팠고

두 번째 보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주는 복잡 미묘한 분위기에 갇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후줄근한 행색에 머리가 하얗게 쇤 런던 아저씨가

"너 이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낯선 사람의 낯선 첫인사였다.


뜨문뜨문한 단어들로 그림이 괴팍하고 신경질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흥미롭다고 하면서

내 생각과 반대로 이 그림들은 따듯하고 포용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문장들의 절반도 안되게 알아듣고 있었지만

내 감상에 관심 가져주는 게 고마워 점점 길어지는 말을 계속 듣고 대꾸해줬다.


이 아저씨는 테이트 모던에서 템즈강 뷰가 가장 좋다는 곳으로 날 안내했고

야경을 보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던 윌리엄 터너의 작품 이야기를 끝이 없도록 설명했다.

전함 테메레이르호 (1839)

윌리엄 터너는 빛의 화가로 불렸다고 한다.


아저씨는 함께 템즈강변의 펜스를 뛰어넘어 아래로 내려가 모래와 물의 빛을 보자고 했다.

좀 무서워져서 멀리서도 보는 게 좋다며 난 이제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가겠다고 했다.


오지랖 넓은 아저씨는 나와 함께 지하철역에 가주었다.

가는 길에 좋은 뷰포인트를 알려주겠다며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었고 슬슬 마음이 초조해졌다.

여전히 오지랖 넓은 이 아저씨는 지하철역 노숙자에게도 내 길을 재차 확인해주며 내가 돌아가는 길을 알려줬다.


늦은 시간에 겁 없게 무모했던 시간이었다.


속 뜻이 어땠든 이 만남의 끝맺음이 좋았으므로

침 튀기며 미술에 대해 얘기했던 그 아저씨를 순수하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했다.


테이트 모던의 이름처럼 깔끔한 전시도 좋았고

늦은 밤 걷는 런던 브릿지까지의 야경도 근사했다.


만남들이 모여 마음이 어수선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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