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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ng khong May 25. 2022

다이어트 7

아는 맛

레비젼을 보며 허리돌리기를 하는건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운동중 하나이다.

넋놓고 텔레비젼을 보다보면 시간도 잘가고 샤워할때 아주 희미하게나마 생긴 배위의 11자 근육을 보는게 몹시 기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나서 오늘 허리를 돌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안 돌아가지?


역시 인바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이놈의 체지방이 복부쪽에 갈퀴같은 손을 쿡 박아놓고 버티고 있으니 한바퀴 돌리기도 힘들었다.

예전엔 아주 유연하게 휙휙 돌아갔는데......

그마저도 몇바퀴 돌리고 났더니 힘들어 풀석 소파에 주저 앉았다. 그러다 곧 길게 늘어져 텔레비젼만 보게 되었다.


이제부턴 무조건 물마니 풀왕창 먹기로 한터라 아침은 두유 하나 먹고 때웠다. 보리차도 한병을 콸콸콸 쏟아 부었다.

 텃밭 수업에 갈때도 마을 버스를 탈 수도 있는데 걸어가기로 했다.한걸음 걸음마다 1그람씩 빠지면 정말 좋겠다. 그럼 천보면 1키로인데. 그럼 만보면 10키로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걷다보니 텃밭이 나왔다.


처음 내게 텃밭이 생겼을땐 정말 좋았다. 비록 3개월 남짓한 시간뿐이었지만 농작물을 키운다는것 자체에 힐링을 느꼈다. 그러나 16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로 물 주기를 미루면서 좀 힘들어졌다. 한사람씩 번갈아주면 2주에 한번 도 매일 줄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2~3번씩 혼자 물주러 가는데 가끔 내가 왕복차비 2400원에 1시간 넘게 시간을 투자하며 물을 주고 있는가는 생각이 들어 서운해졌다. 몇몇은 내게 고맙다,수고했다 라고 말을 건넸지만 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들 누군가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루었고 그 누군가가 점점 내가 되어가는 현실이 슬펐다. 그래도 가끔씩은  다른이도 함께 물을 주었고 바싹 마른 농작물 위로 시원하게 물줄기가 내려앉아 싱싱해지고 또 수확할때마다 풍성해진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곤했다.


몇번이나 내 밭만 주자 싶다가도 그래도 다른 애들이 눈에 밟혀 그냥 주자 하다가 슬개골염까지 생겼는데 왜 내가 그 무거운 물조리개를 들고 바지에 흙탕물까지 다 튀겨가며 물을 주는가 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은 가고 아아..... 답답하다. 함께 주면 좋겠는데 내 마음같지가 않다.

(결국은 안주면 내가 괴로우니 주는 수 밖에 없구나.

오가는 길에 살이나 빠지면 좋겠구먼...ㅎㅎㅎ)


답답한 마음에 보리차를 붓는다. 녹차라떼 마시고 싶다. 아까 텔비젼에서 봤던 태국의 망고찰밥도 너무너무 먹고 싶다. 2년동안 태국에 살면서 망고시즌마다 하루 4개씩은 까먹었던 망고들이 머리속에서 휙휙 지나갔다. 그 과즙! 그 달디단 맛! 양 옆을 짝짝 잘라내어 칼집을 내고는 쭉 잡아 까뒤집어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먹으면....으아!!! 세븐일레븐에서 20밧주고 사온 차가운 요거트에 찍어 먹으면... 으아!!!  가운데 커다란 망고씨앗에 두툼하게 붙은 망고 속살은 비뜯듯 쭈욱쭈욱 뜯어  먹어도 되고 통째로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먹어도 된다. 같이 나오는 찰밥은 코코넛 연유를 뿌려서 새콤달콤~


아는 맛이 정말 무섭구나 싶었다.


망고를 생각하니 단순한 나는 급 기분이 좋아졌다. 불행한 이야기겠지만 어차피 지구 온난화가 되고 있다면 서울에도 집집마다 망고,파파야, 바나나 나무를 심어 후덜덜한 과일가격 걱정말고 실컷 먹어봤으면 좋겠다.


텃밭은 아주 풍족했고 나는 미친듯이 짝꿍언니랑  수확해서 기부를 위한 포장까지 마쳤다. 사람이 많다보니 일이 금방 끝났다. 잘 쌓인 야채다발 뒤에서 기념사진까지 찍고나니 아까의 기분나빴던 감정도 그냥 될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야채는 맛없지만 이제 무조건 많이 먹기로 했에 부스러기 야채를 부지런히 비닐에 쑤셔 담았다.

늘 듣는 법륜스님의 법문처럼 입이 땅기는대로 먹으니 살이 찌는 것이다. 월급의 반이 식비로 날아갔다. 비싸게 찌운 살이다. 그리고 더럽게도 안빠진다. 하지만 격렬하게 빼고 싶다. 나도 이쁜 옷좀 입고 싶다. 계단 오를때 숨도 안찼으면 좋겠고.


필라테스를 다녀오고 돌아오는길.

이런저런일이 스트레스로 쌓여 슈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5개나 사왔다.

먹으면 안되는데 그동안 안먹었으니 가끔은 괜찮다며.

일단 아이스크림이 있으니 뾰족뾰족했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언제든 먹을 수 있어. 너무 억지로 참지 말자. 폭발하면 하루 4~5개나 먹게 되니까. 너무 견디기 힘들면 하나 정도는 먹도 돼.


허기진 마음에 야채김밥을 2개씩 삼키듯 먹어 치우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은 오늘보 덜 먹고 더 움직이자.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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