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현재진행형
작년 8월 말을 끝으로 20년간의 셀러리우먼 생활을 내려놓은 지 10개월 만에 드디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내 ‘회사’ 문을 열었다. 1인 창업자라 누가 들으면 회사라는 말이 꽤나 거창하겠지만, 사업자등록증과 그 옆에 놓인 빤짝한 새 명함을 바라보고 있자면 두 달이 지난 오늘도 흐뭇-하기 그지없다.
지겹디 지겨운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는 나만의 사업을 해야지 했었는데, 막상 회사 밖으로 뛰쳐나와 차가운 현실을 그것도 제주 촌에서 마주하는 것이 처음엔 그다지 신나지 않았다. 남편이 매월 가져다주는 월급을 뒷배 삼아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종이에 써 내려가던 일을 수개월 반복했다. 길거리를 지나다 문득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노트에 따로 적어 두기도 했다. 올해 봄부터는 4개월 동안 매일 집에서 40-50km 떨어진 서귀포 시내와 제주시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경력단절여성을 지원하는 새일센터와 사회적 기업육성센터, 산학융합원, 스타트업베이 등 여러 곳의 교육 기관을 통해 창업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함께 교육받는 학생들과 거리감이 들 때나 창업이 과연 나한테 맞나라는 의문이 들 때면 난 누구고 왜 여기에 있는가 머릿속으로 돌림 노래를 돼 내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닐지 조바심이 나 구직 사이트를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내 사업은 사실 나에게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간 회사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 상이지만, 예전엔 내가 서비스를 받는 주최였지만 이젠 내가 공급자라는 것. 내 회사의 이름은 로컬온 - 지역의 가치에 불을 켜다 -라는 의미를 지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업이다. 20년간 마케터의 직함으로 매달, 매분기, 매년, 새로운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일상이었다. 제품의 selling point를 발굴하고, 걸맞은 카피를 개발하고 멋들어지게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해서 채널에 소개하는 일.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유관 부서와 파트너들과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고 또 싸우는 전쟁터와도 같았던.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수개월 교육을 받는 도중 화장품 회사, 과즐 회사, 체험 농장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든 생각은 회사를 차리려면 내가 잘 아는 일이어야만 했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체험 농장을 꾸리고, 화장품을 죽도록 좋아하던 사람이 화장품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차리는 건 다만의 취미 생활이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기에는 사업성이 너무 불확실했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알게 될 때까지 어쩌면 수년이라는 시간을 투여해야만 하는데 난 그러기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당장 돈을 벌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버는 것보다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내가 회사에서 벌었던 시간당 급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내에 회사에서 벌었던 시간당 급여 수준으로 돈을 벌고 또 그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40대 중반 아줌마가 그동안 맛본 사회의 꿀은 잔인할 정도로 너무 달콤하다.
한 달 만에 기관 지원 사업 중 하나인 기업 매칭에 성공해 회사 문을 열고 첫 고객이 생겼다. 단기 계약이고 금액은 취업 수당 정도라 당장 돈은 안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험해 보기에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또 한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틈틈이 AI와 디지털 관련 수업을 내달려 자격증을 따놓은 덕에 (아이들은 헬로캅 주인공인 차탄의 엄마가 자격증 지갑을 촤르르 쏟아내는 장면을 연신 읊어댄다.)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AI 콘텐츠 수업을 맡게 되었다. 마케터의 관점에서 AI 툴을 활용해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 초보 과정을 담은 수업으로 한 달간 24시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첫 3시간 수업을 무사히 마쳤고, 이제 절반쯤 왔다. 인생 첫 일반인 대상 강의지만, 꽤나 흥분되고 신나는 일이다.
이렇게 조금씩 그러나 온전히 나의 이름을 시장에 알리고 있다. 회사의 틀을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시장의 기회를 잡고 돈을 벌 수 있도록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제안서를 쓰며 희망찬 꿈을 꾼다. 나의 회사 매출 목표를 향해. 지금은 비록 월 100만 원이 채 안되지만, 언젠가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그 꿈을 구체적으로 계속 꾸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일이 첫 단추가 되어 돈을 벌어 너무 신나서 그 일이 미치도록 좋아지게 되는 그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