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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돌 키우는 T
Feb 25. 2019
천천히 변하는 것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그릴에서 천천히 치즈가 녹고 보글거리며 살짝 갈색으로 변해가는 광경이나, 과일청을 담은 병에서 기포가 천천히 올라오는 것. 나는 매년 오미자나 풋귤 매실 같은 것으로 한 가지씩 청을 담는다. 어쩌면 넋을 잃고 들여다보기 위해서.
투명한 병에 설탕을 섞은 과일을 넣고 둔다. 설탕에 과일 물이 배어 나와 녹아가는 걸 보는 게 좋다. 삼투압 작용으로 과즙이 모두 빠져나오면 과일은 쪼글쪼글해진다. 그러면 설탕을 조금씩 더 넣으면서 뒤섞어준다. 살아있는 걸 키우는 것처럼 매일매일 돌봐주는 거지.
이윽고 발효가 되면 탄산음료처럼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온다. 매일 한 숟갈씩 설탕을 넣어가며 계속 돌봐준다. 충분한 기간 동안 숙성하여 물이 다 빠진 과일을 건져내고 나서 완전히 포화상태로 만든 용액은 상온에 오래 두어도 잘 변질되지 않는다. 3년, 혹은 더 오랜 기간 동안 두고 먹기도 한다.
완성이 되고 나서 먹을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돌보지 않게 되더라. 돌봐줄 필요가 없어졌기도 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몇 달이고 매일매일 돌봐주는데 말이지... 과일청은 음식이니 완성되면 먹어치우는 게 목적이니 그렇지만, 사람과의 만남에는 완성이란 게 없었으면 좋겠다.
매 순간 필사적으로 평온하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많은걸 바라지는 말고, 줄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주기를 바란다.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또는 언제라도 서로가 떠날 수도 있을 것처럼, 내일 죽어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