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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Sep 22. 2022

제가요? 강연을요? 난생처음 강연하며 깨달은 것

난생처음 사람들 앞에 서보고 깨달은 것들

2019년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코리님에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새로운 오프라인 강연 모임을 기획 중인데 발표를 맡아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네? 저요?,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이야기하려다 '네,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머릿속의 떠오른 생각과는 정반대로 대답을 한 것이다. 


지난 1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될 일은 된다>> 책의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삶은 당신에게 언제나 많은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스스로 거부하지 말라는 마이클 앨런 싱어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코리님을 알게 된 건 글쓰기 오프 모임에서였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1월 평일 광화문 점심을 같이 했다. 그 뒤로도 스몰 스텝 모임, Design 2019 Workshop을 통해 만남이 이어졌고 나코리님이 주최하는 생산성 강의도 들으면 연을 이어갔다.   


승낙했으니 강의 준비를 해야 했다. 난생처음 하는 강연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승낙했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그 뒤로 연일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뭐로 하지? PPT를 만들어야 하나?' 막막하던 그때 나코리님 생산성 강의에서 배운 Dynalist가 떠올랐다. '그래 이걸로 해보자, 근데 뭘 얘기해야지?' 


막막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 접고 무작정 나에 대해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하나씩 적다 보니 어느덧 목록이 40줄이 넘어갔다. 신기했다. 중복되는 내용들을 하나로 모으다 보니 딱 5개의 폴더로 정리되는 것이 아닌가? 행동하는 자만이 배울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이 딱 맞았다. 


발표날은 금세 찾아왔다. 첫 시작이 나였다. 발표 날이 다가오자 내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걱정하는 마음과 해보려는 마음이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발표 순서를 바꿔 달라고 해볼까, 갑자기 사고가 났다며 없는 핑계를 만들어서 참여하지 말까 하는 쪽과 주최자가 생각이 있으니 알아서 배정했겠지, 일단 해보지 뭐 하는 생각 쪽으로 나뉘었다. 걱정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근데 잘할 수 있을까?' 


발표 당일 아침 이런 상황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나코리님의 카톡이 다시 도착했다. 이따 뵙겠다면서 맨 처음 준비하면서 읽어보라고 보내준 글을 읽어보라는 당부도 있었다. 처음엔 이게 뭐냐고 무심히 넘겼던 글이 당일이 되어서야 눈에 들어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이크를 잡아라. 나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발표를 준비하던 7주일의 시간이 떠올랐다. 준비하며 행복했다. 준비하면서 즐거웠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추가하는 시간이 더없이 뿌듯했다. 이제 무대에 서는 일만 남았다. 존경하는 김창옥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이 무대에 설 때와 외국 사람이 무대에 설 때의 차이를 아시나요?' 한국 사람들은 공연 전에 이렇게 얘기한대요. "야~~ 잘하자", 외국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답니다. "즐기자, 즐기고 내려오자."


'떨릴 것이다. 100퍼센트. 하지만 김창옥 교수님 이야기대로 떨더라도 즐기고 내려오자.' 그렇게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강연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에 계속 브레이크가 걸렸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 강사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리는 백지처럼 변한 경험은 많은 탓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란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내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  


약속 시간 30분 전, 나코리님에게 또 연락이 왔다. 강의실이 만석이란다. 나의 강단 있는 용기에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어쨌든 될 일은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어 있었다. 메시지의 힘에 끌려 결국 강연장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사람들 앞에서 서보고 깨달은 것들


15분은 짧았다. 난생처음 강연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기억에 남는 건 세 가지다. 처음 마이크를 받아 들었을 때 덜덜 떨리던 손, 안녕하세요라고 첫 운을 떼던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 그게 생에 처음 남들 앞에 서본 사람이 기억하는 세 가지다. 지금도 그때 떨림이 고스란히 몸의 기억으로 남았다.  


남은 게 또 있다. 아쉬움도 남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고 내려온 듯한 아쉬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준비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됐는지에 대한 걱정, 내 자랑만 하다가 내려온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마음, 귀한 시간을 내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에게 도움은 됐을까 하는 의심  


강연 후 내려와 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연단을 내려와 쉬이 진정되지 않아 이빨이 달달달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런 내게 나코리님이 다가와 이렇게 얘기했다. 


'최고였어요 오류 정.'


처음에는 도대체 '왜' 하냐고 물을 것이고, 나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낸 거냐고 물을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누군가 당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살면서 마이크가 주어진다면 거부하지 말고 꼭 무대에 서보라고. 삶의 선물들이 당신을 반길 것이라고 말이다. 떨리더라도 마이크를 꼭 잡아보라고 말이다. 니체의 말처럼 행동하는 자만이 배울 수 있을 테니까. 행동하면 어떻게든 전보다 달라져있을 테니까.


보잘것없는 나를 강연에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나코리님께, 첫 강의에 벌벌 벌 떨고 있는 나를 옆에서 묵묵히 바라봐주며 노트북을 선뜻 내어준 세환님께 그리고 함께 하신 강사님들께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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