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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Aug 16. 2023

연희향유_내 곁의 취향공간

혼자의 공간

신촌이 자리한 서대문구는 평균 주거 연령이 낮고, 1인 가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서울연구원 <서울시 1·2인가구 유형별 특성에 따른 주택정책 방향(2021년)>). 신촌에 거주하는 주 연령층은 20대~40대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거주 연령층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이처럼 거주 연령층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대학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촌에는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가 있고, 좀 떨어졌지만 멀지 않은 거리인 가좌동에 명지대, 아현역 부근에 추계예술대가 자리한 대표적인 대학가이다.

신촌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되었지만, 서울에 본가를 두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1인 가구로서 첫 독립, 첫 자취 등을 통해 일반적으로 처음 겪는 혼자를 경험한다. 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도, 신촌이나 부근의 홍대·상수·망원 따위의 지역에 산재한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어리다고 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젊은 30~40대도 신촌에 많이 거주한다. 덕분에 신촌에는 혼자를 위한 공간이 많다. 신촌에 가장 많은 주거 형태는 원룸, 즉 혼자의 공간이다.  연희동은 신촌에 자리한 몇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대학생의 자취는 이 동네의 주거 형태가 대체로 원룸이나 오피스텔로 바뀌는 데 영향을 미쳤고, 1인 거주 양식은 학생 외의 젊은층을 이 동네로 불러들였다.    

많은 이가 혼자의 공간으로 원룸을 택하고 그 공간을 겪어낸다. 1인 가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 신촌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도 원룸이다. 원룸은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는 돈에 비해, 다양한 면에서 혼자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만족시켜주는 가심비가 높은 주거형태이다. 그러나 원룸은 사적 공간을 한 눈에 노출시킨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 공간이다. 특히 원룸의 일반적인 구조상 가장 사적인 공간, ‘침대’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노출될 때 느끼는 감정은 당혹감을 넘어 불안감과 수치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침대란 가장 편안하면서도 무방비한 상태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룸 거주자 중 많은 이가 커튼이나 가리개 등을 이용하여 침대로 향하는 시선을 가리는 한편 공간을 분리해주고자 노력한다.


혼자의 공간에서 1인분의 삶을 시작한 이들은 곧잘 당혹스러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을 거둬야 한다는 걸. 이제까지 나를 거두고 보살폈던 게 오롯이 내가 아니었다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지극히 타인 의존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 외에 함께하는 사람도 나를 돌본다. 나 역시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돌본다. 함께 산다는 건 생활의 일정 부분을 함께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가 되면 내가 돌볼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고, 나를 보살피는 이도 단지 나뿐이다.

혼자가 된다는 건 나를 들여다볼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이기 전보다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갈 수 있고, 어쩌면 자신도 모르던 나를 발견하게 될 수 있으니까. 나를 가장 잘 아는 게 나라고 자신했다가도, 혼자라는 새로운 상황이나 상태를 맞이하면 전혀 몰랐던, 인지하지도 못했던 자신을 대면하기도 한다. 혼자라는 상황(또는 상태)은 일반적으로 공간적인 면에서 찾아온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 또는 그 누구와 함께하지 않고, 홀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은 때때로 번거롭고 귀찮은 한편 꽤나 즐겁고 새롭기도 하다. 혼자인 시간을 이전보다 더욱 즐기게도 되고, 혼자이기 전에는 일절 하지 않던 일, 예를 들면 아침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생활화하거나 반려 식물을 기른다거나, 빨래나 청소 등의 살림을 하는 생활의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혼자의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여분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창고 역할을 하는 베란다 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원룸의 냉장고는 크지 않아 여분의 먹거리를 사도 넣어두기 어렵다. 여분이 없기에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쟁여둘 때 약간은 불편한 혼자의 공간은 달리 생각해보면 추가하고 쌓아두는 여분이 없기에 담백하다. 삶에 무엇이 더해질 때 그건 편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추가의 책임이나 제한이 되기도 한다. 혼자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콤팩트하다. 더함이 없어 불편하지만 그 덕분에 반대로 편하다. 꼭 1인분의 삶이 그 공간에 담긴다.

자신을 돌보는 것 중에서 나를 먹이는 일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이다. 한 명 분의 식사를 위해 장을 보고 그걸 들고 이고 지고 온다는 게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나를 먹일 식료품으로 무거워진 짐을 내 손 가득 들곤 혹은 아침배달 식료품이 가득 담긴 상자를 정리하며, ‘이렇게까지 먹어야겠니?’ 라고 자문할 수 있다. 그렇게 먹어야 건강과 삶의 리듬이 무너지지 않고 잘 유지되겠지만 혼자인 자신을 거둬 먹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신촌에서라면 이런 번거로움은 더욱 커진다.

혼자의 공간이 산재하는 이곳에 적당한 규모의 시장이나 마트가 없다는 건 퍽 모순적이다. 예전에 신촌에도 신촌시장이 있었다. 서북 지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고 할 만하던 신촌시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게 지금의 현대백화점이다. 백화점과 함께 사러가 마트가 있지만, 모두 적당한 생활 마트라기에는 규모가 크고 위치가 애매하다. 아침이면 도착하는 편리한 배송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곳곳에 있는 편의점들 덕분에 조금 비싼 가격에 아쉬운 대로 1인분의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식재료들은 지나치게 남지 않도록 소분하여 일부는 보관하고 일부는 음식으로 만든다.

오직 한 사람, 나를 위한 음식은 요리보다는 조리를 통해 만들어진다. 가스레인지나 인덕션보다 전자레인지가 익숙한 1인분 음식이다. 혼자의 음식은 간편하고 적당한 품과 시간이 든다. 어쩌면 약간 부족할지라도 과하게 넘침 없는 적절함과 담백함이 한 그릇 담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혼자의 공간이 지닌 특징이다. 집 밥과 같은 맛과 건강함을 보장하지 않는 적은 양의 레포트르 식품이나 반찬, 밥통을 두고 밥을 지어 먹는 대신 햇반, 빵 등 간편식을 먹으며 지친 몸으로 음식을 하다 더 지치는 일 없이, 냉장고 안에 들어찬 음식을 혼자 먹어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혼자 소비하지 못한 음식을 버릴 때 드는 가책을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게 반드시 건강한 식습관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는 식습관의 자유가 주는 홀가분함이나 편안함 따위는 일정기간 건강함, 건강에 대한 관심을 까맣게 잊게 할 정도의 즐거움을 준다.

혼자의 공간은 그의 취향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특히 혼자가 입는 옷에서 그 취향은 단번에 잘 드러난다. 내가 입는다고 반드시 내가 고른 옷은 아니다. 한 사람의 옷차림에는 그의 주변인들 의견이 개입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개입의 폭은 커진다. 조금 짧은 스커트가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추위를 잘 안타서 패딩코트가 아닌 재킷을 입은 것인데, 아빠의 걱정 어린 참견이 따라 붙을 것이다. 여름 지하철 에어컨이 두려워 걸친 카디건에, 옅은 염색 머리와 잘 어울리는 같은 톤의 니트에도 불만의 시선이 닿을 수 있다.

옷은 한 사람의 취향을 표출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내가 입은 옷이 나의 기호와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으니 옷이란 단순히 온도나 맞추는 수단이 아니다. 내가 입는 옷에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 불만 섞인 의견이 섞인다면 나의 취향과 존재를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내가 온전히 내가 되는 게 어렵다는 건 적절치 않다. 그건 존재의 편안한 상태나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될 때 가장 편안하고 그래서 적절하다. 혼자의 공간에서라면 나의 옷을 고르는 건 오직 나이다.


혼자를 먹이고, 입히고, 혼자 머무르며 책임지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처음 겪는 혼자와 그 공간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사함에 유의미하다.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 다른 공간에서의 노동은 삶에 역동성을 주기 때문에 불편함이나 불안 등의 어려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공간의 변화는 목적한 바는 아니더라도 주변을 환기해주고 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긍정적 변화를 지닌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새로운 움직임은 사유의 환기를 낳고, 삶의 채도를 높인다. 곧 삶의 ‘전환’이다. 머무는 공간을 새로이 한다는 건 단순한 이사나 이동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혼자의 공간으로의 변화는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 혼자의 정체성이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고, 혼자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게 되는 삶의 전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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