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를 읽고
TV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걱정 섞인 우려도 함께 등장했다. 사람들이 바보상자 앞에만 앉아 있느라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실제로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지금은 TV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인해 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등이 등장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성인 중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책을 읽는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3.9권이라고 한다. 갈수록 독서량은 줄어 들어가는 시대다.
그러나 TV와 다르게 스마트폰은 조금 다른 변화도 만들어낸 것 같다. 마찬가지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22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의하면, 2022년 웹소설 전체 시장 규모는 약 1조 390억 원에 달하며, 이는 2020년 6,400억 원 대비 62% 성장한 수치다. 또한 당해 웹소설 이용자 수는 약 587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웹소설을 접하는 주요 매체가 스마트폰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동전의 반대면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사람들은 전화가 등장하고,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과연 그런가? 이는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없지만 우리 개개인의 일상을 생각해 보자. 물론 예전처럼 펜이나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에 수십에서 수 백통의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낸다. 카카오톡, 텔레그램, 슬랙 등을 이용해서 말이다. 또한 좋아하는 유튜브 동영상에 댓글을 쓰기도 하며, 업무 메일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백 편씩 쏟아지는 웹소설은 바로 인간이 모니터 반대편에서 써내려 가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고루한 이야기를 주워섬긴 것은 나오미 베런의 『쓰기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고작 5년 정도 전만 하더라도 AI가 글을 쓴다는 것은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쓸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지금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지만, AI가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것 같다.
또한 압도적인 생산량은 어떠한가.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들려오는 지름길이자 정도이자 왕도인 조언은 이것이다. ‘다작, 다독, 다상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생각의 정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다작과 다독에서 인간은 AI를 결코 이길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성은 금과옥조다. 효율성이라는 제1원칙은 그 외의 다른 명분들을 사소한 것들로 만들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게끔 만든다. 효율성은 바쁘고 팍팍한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짓누른다. 특히나 “빨리빨리”라는 말이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진 것이 보여주듯이, 한국인들의 삶은 때때로 극단적일 정도로 효율성을 추구한다.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글 쓰는 기계는 극한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심지어 현재에도 특정한 분야에서는 AI가 직접 기사를 써서 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AI에게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그냥 맡겨 버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말 그래도 괜찮은 것인가? 이 질문은 저자 나오미 베런이 이 책을 쓰게 만든 이유이며, 그 답이 어려운 까닭에 500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 된 이유다.
“나는 글쓰기를 고귀한 인간의 능력이라 여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지식과 전문적 의견을 나누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할 힘을 준다.”
저자는 서문에 이러한 자신의 의견을 내걸고 책 전체를 주파한다. 저자의 설명대로 이 분야는 워낙 방대하고 전문적이라 짧은 글로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며 쉽게 풀이해 독자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저자의 주장은, AI의 압도적인 효율성을 인정하고 이를 이용하되, 글쓰기의 본령마저 내주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글쓰기는 개인 고유의 사고 능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고도의 정신 활동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서로 더 나은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행위다. 그리고 이 행위가 인간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몇 백 년이 흐른 다음에도 회자되는 기대승과 이황의 서신 교류 같은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AI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압도적이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예를 떠올려보자. 휴대전화가 없던 어릴 적만 해도 나는 친구들의 집 번호를 10개는 넘게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데 무엇하러 11자리 번호를 외우는 수고를 한단 말인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AI에게 글쓰기를 아웃소싱하는 순간, 우리는 글을 쓰는데 동반되는 지적 체계를 가동할 능력을 점점 잃어갈지도 모른다. 이는 기억력보다도 심각한 문제다. 기억력은 다른 기능들로 대체할 수 있지만, 사고력은 그렇지 못하다. 그 어떤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에서 1학년 1학기에 학생들에게 창의적 글쓰기나 비판적 사고 같은 과목을 필수로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본다면, 그 중요성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저자는 AI는 글쓰기 교육에 보조적인 역할에 한정하여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글쓰기의 궁극적 목적이 사고력, 판단력 증진에 있으니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까지만 말이다.
또한 AI가 여전히 완벽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3부의 창의성 논쟁은 상당히 흥미롭다. 다른 부분은 모두 건너뛰더라도 이 부분만은 일독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꼽히는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평범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이는 창의성이라는 것이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실제로 피카소는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도 있지만, 그는 평생을 걸쳐 약 5만 여 점의 예술 작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예술가 중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면, 휘적휘적 놀다가 하루 반짝 작업을 해 걸작을 만들어낼 것 같은 이미지를 우리는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매일 같이 모방하기도 하고 베끼기도 하고 반복하기도 한 끝에야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맥락 하에서 AI는 인간이 주입해 준 기존의 예술 작품들을 통해 학습을 한다. 그 뒤에야 비슷하게 ‘모방’을 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것이지만 새로운 경향이나 사조를 창조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향을 극한으로 학습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긴 할 테지만 말이다. 인류 예술사의 변곡점은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존 학파의 경향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전혀 다른 시각과 관점을 제시한 천재들이 등장할 때, 예술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AI는 바로 그 전제조건까지는 그 어느 천재들보다도 월등하게 달성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AI가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즉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을 가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AI가 단지 글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챗GPT에게 부탁해 외국 여행의 일정을 짜기도 하며 어떠한 경우에는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설 연휴 기간에 미국 증시를 뒤흔든 ‘딥시크 쇼크’는 어떤가. 단지 중국에서 챗GPT에 맞먹는 성능을 지닌 AI를 발표했을 뿐인데, 나스닥의 대형 기술주들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물론 연휴 후에 개장한 한국 증시에서도 대형 반도체 회사들의 주가가 영향을 받았다.
개개인과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상 이미 삶 곳곳에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딥시크 쇼크로 타격을 받았던 주식은 엔비디아인데 엔비디아의 주식은 최근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종목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당연히 출렁이는 주가를 보면서 고통을 겪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이다.
구글의 자동완성 기능, 자연어 번역기능 등이 하나하나 세상에 등장했던 시기를 살아오면서 기술의 발전에 감탄했다. 또한 구글의 딥마인드가 만들어낸 알파고의 경악스러운 능력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챗GPT는 실생활에 더 가깝게 침투해 있다. 또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챗GPT의 능력은 신기하면서도 두렵다. 이 책을 읽고 이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숙고할 기회를 가져서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