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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영원을 알기 위하여

지웅배(우주먼지)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을 읽고

by 고전파 Apr 07. 2025
지웅배(우주먼지)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엘든링>이라는 게임의 최종 보스는 ‘엘데의 짐승’이다. 엘데의 짐승은 최종 보스다운 강력함과 함께 그 디자인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었다. 외형은 고대 생물 ‘할루키게니아’를 닮았는데, 그 안에 혈관 같은 것들이 보인다. 그리고 혈관들은 점점이 빛나는데, 마치 이 모습이 우리가 관측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과 유사하다.      


          라니아케아는 하와이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천국’이라고 한다. 단지 사진을 보고 있을 뿐인데, 마치 그 말 그대로 천국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주 단위로 우리의 주소를 작성하면 이렇게 된다.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처녀자리 초은하단, 국부은하군, 우리은하, 태양계, 지구.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규모의 라니아케아 초은하단도, 우주의 한 가운데 미지의 영역인 ‘거대인력체’를 향해 끌려가고 있다니 우주의 규모는 아득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현대 천문학에서 추정하는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다. 이건 기껏해야 100년을 살다가 가는 인간에겐 영원 같다. 우리는 우주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을 이 우주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다.                










         일본 가수 유우리의 <베텔기우스>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더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런 영상이 떴다. 오리온자리를 이루는 별 중 하나인 베텔기우스는 곧 폭발하거나 어쩌면 이미 폭발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베텔기우스는 지구로부터 약 548광년 떨어져 있고, 지금 이 순간 폭발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약 548년 후에나 베텔기우스가 폭발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베텔기우스의 이야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베텔기우스나 다른 별빛들은 모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날아온 것이다. 보통의 인간은 100년을 살기 어렵다. 그러므로 500년도 한 인간에게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별빛은 지금 우리의 망막에 닿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날아오는 것이다. 비록 별빛에게 그러려고 한 의지는 없었을 테지만,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기원전부터 밤하늘에 관심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 덕분이다.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까지의 거리를 재기 위한 시도에서부터 시작해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지평선을 알아내려는 시도까지 이 도전은 숱한 어려움과 직면해왔다.      


          우주먼지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기원전 약 1,5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네브라 스카이디스크’는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봐도 그럴싸할 정도로 정밀한 밤하늘을 담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가 우주에 갖고 있던 관심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금성의 태양면 통과 관측을 통해 지구에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를 알아낸 이야기는 흥미롭다. 삼각비라는 기초적인 수학 도구를 사용해서 알아냈다는 점 때문이다. 천문학 연구라고 한다면 거대한 망원경과 때로는 로켓 같은 최첨단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그러한 여건이 없었고 가진 바 안에서 그 성과를 이뤄냈다.      

          물론 천체 관측은 당연하게도 상당히 고차원적인 이론이 탄생하는 일에도 기여했다. 이를테면, 수성 궤도가 뒤틀리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천문학자들은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이용해왔다. 이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플러 효과’처럼 빛의 파장을 이용해 관측하려는 천체가 다가오는지 멀어지는지를 알아내는 방법에서부터, 빛의 색깔로 절대적인 밝기를 유추해 그것을 다시 거리를 재는데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사진을 이용해 별들이 움직이거나 별빛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해내기도 했다.      










          이처럼 이 책 안에는 천문학자들의 고뇌와 필사적인 탐구 정신이 담겨 있다. 동시에 천문학자들이 얼마나 낭만적인지를 느낄 수 있다. 으레 천문학자, 또는 과학자들이라고 한다면 T 100%들만 모여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안에 숨어 있는 천문학자들의 F 감성은 유독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윤동주 시인의 <서시> 구절 중 하나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표현이 단순히 시적 허용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대목은 인상 깊다. 지구 대기권 밖에서 들어오는 별빛은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별빛의 경로가 요동치면서 실제로 우리 눈에 깜빡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대기권의 영향을 벗어나 좀 더 정확한 관측을 위해 인류는 관측 우주선을 대기권 밖으로 내보냈는데, 이 우주선의 명칭은 ‘히파르코스’다. 히파르코스는 고대 천문학자의 이름이다. 그들에겐 선배를 잊지 않는 낭만이 있다. 또한 허블과 섀플리도 인상적이다.    

          섀플리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은하’ 밖에 존재하는 별개의 은하임을 인정하면서 허블에게 ‘이 편지는 나의 우주를 파괴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227쪽) 또한 허블은 ‘천문학의 역사는 후퇴하는 지평선의 역사’라는 말을 남겼다. (228쪽) 이쯤 되면 천문학자들은 문학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수강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반면에 천문학의 발전은 우리가 밤하늘에 그려온 낭만적인 이야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베가와 알타이르, 즉 견우성과 직녀성이 사실 1000광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처럼 말이다. 1000광년의 거리는 지구에 존재했던 역사상 모든 까마귀와 까치들이 모여도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은 천문학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설명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 우주먼지의 장점만을 담은 책이다. 너무 아득해서 감이 오질 않는 천문학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 책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나만의 작은 우주 지도가 그려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윤동주의 시를 인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낭만성이 이 책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의 말대로 ‘텅 비어 있는’, ‘가보지도 못할’ 우주의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들린다. 이 책을 덮으면서, 이처럼 낭만적이고 친절한 안내자와 함께할 다음 우주 히치하이킹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해당 리뷰는 예스24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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