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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Oct 28. 2023

잠(JAM) 23

SF 장편소설

23. 지우


- 여긴 어디죠?


깨어난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신체를 고정했던 장치가 풀리자 여자가 앞으로 픽 쓰러졌다. 기주가 그 몸을 잡아 의자에 앉혔다. 기주의 얼굴을 본 여자의 눈이 동그래지며 눈물을 흘렸다.


- 기주?


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맞아, 나야. 100년 만에 만났는데 왜 울어. 이제 괜찮아.

- 아 당신이군요. 기주. 보급기지 탈출에 성공했군요. 잘됐어요. 정말 잘 됐어.


기주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를 토닥여주었다. 여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 우는 거랍니다. 기주. 여자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백 년 만의 콘택트.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여자가 다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엘리와 에밀, 기주… 그럼?


- 당신이 그분인가요?


엘리를 보며 주린이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리나 에밀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다른 캡슐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캡슐을 보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간 여자가 캡슐에 있는 사람을 보며 아… 하는 침음성을 냈다.


- 이분이… 그분이군요.


콘트롤 룸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엘리가 돌아보니 지우가 룸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잠시 상황 파악을 하는 듯 둘러보는 게 보였다. 순간 엘리가 기주를 한 번 보고 지우를 또 보며 역시 그랬어! 라고 중얼거렸다.


- 뭐가 그래요?


에밀이 그 작은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 말했다. 엘리는 이 순간 직감이 맞았음을 느꼈다. 기주가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라고 느꼈다. 그게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지우가 들어오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다.


- 저 사람 얼굴을 봐요.


엘리의 말에 에밀이 지우를 돌아보았다. 잠시 얼굴 모습을 익히는가 했더니 아! 하며 기주를 보았다. 기주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 아빠는 어딜 갔죠?


지우가 모르겠는 상황은 집어치우고 선배라고 소개한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가 아빠는, 이라고 말할 때 비로소 기주가 지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 저 황금빛 눈동자는 마치 보스를 보는 것 같군요. 엘리. 저 사람의 아빠가 누군데요?

- 아, 저 사람은 지우라고 하고 제 신연방 대학 후배라고 들었어요. 아빠는…


아빠는 이라고 하며 기주를 슬쩍 본 엘리가 말했다.


- 아까 달아난 관리자가 아빠라고 하네요.

- 아까 그 남자요? 닮은 데라고는 1도 없는데?


에밀도 기주를 슬쩍 보고 말했다.


- 아빠가 달아나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우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 기주. 이 사람 기주와 닮은 얼굴인데 본 적 없어요?

-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관리자의 아들인가요.

- 그렇다고 들었다는 거죠. 이룬님 인스톨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관리자가 저를 강제로 수면시키고 자신도 수면에 들었다가 깨어난 게 오늘 아침이었어요. 관리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아들도 자기처럼 수면시켰다고 했어요. 대신 조금 먼저 깨어나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엘리의 말에 지우가 화가 나서 외쳤다.


- 강제라니요. 아빠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아빠를 함부로 말하면 아무리 선배라도 그냥 있지 않겠어요.


엘리가 그런 지우에게 손가락을 흔들고 말을 이었다.


- 관리자가 아흔아홉 명의 휴머노이드를 살해한 게, 그리고 동시에 별 지우개 함선들은 모두 자폭했을 거라고도 말한 게 바로 오늘 아침.


살해라는 말에 지우가 흠칫 놀랐다. 아빠는 늘 자신을 사랑했고 늘 자신의 시간을 이끌어 준 버팀목이었다. 아빠를 희대의 살인자로 매도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당신들!


지우가 뭐라고 소리치려 할 때 엘리가 문득 손가락을 탁 튀기며 지우에게 물었다.


- 아! 진짜 당신 관리자를 처음 본 게 언제죠?

-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 아빠를 언제 처음 봤냐고요. 내 말이 어려워요?


지우의 말문이 막혔다. 지우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하자 수면 시스템에 익숙한 에밀이 나섰다.


- 아, 이제 알겠다. 그런 사례는 센터에서 흔한 일입니다.


에밀의 말에 지우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 아이가 성장하기 전에 어떤 이유로 수면에 든 부모는 자신들 없이 아이가 고아처럼 자라는 게 싫어서 아이도 같이 수면에 들게 하고 자신이 깨어나면서 아이도 같이 깨어나게끔 예약해둡니다. 그러면 100년이 지나든 200년이 지나든 아이를 케어할 수 있으니까요.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저는 비록 첫 만남은 아빠와 영상으로만 만났지만 열여덟 살이 되고 아빠를 만났어요. 당신들은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그때 기주가 지우 앞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기주는 지우의 얼굴에서 익숙함을 만났다. 엘리가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 보며 에밀에게 말했다.


- 지우는, 이룬의 아들이에요.


이룬이라는 말에 기주가 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 이룬의 아이?

- 맞아요. 이룬님을 인스톨하기 전에 출산을 도왔는데 지우를 낳으면서 가수면을 스스로 풀어 모두를 놀라게 했었죠. 그리고 아이를 눈앞에 두고 지우… 이지우… 라고 하고 실신했어요. 분명히 기억나요.


엘리의 말에 기주가 다시 지우를 보았다. 자신을 닮은 눈동자, 이룬의 머리색.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가 이룬을 꼭 닮은 얼굴.


- 그럼 내가… 네 아빠란 거네.


기주의 말에 지우가 기주의 눈을 외면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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