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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Nov 06. 2023

잠(JAM)24

SF 장편소설

24. 기억을 믿나요



- 제 아빠는 관리자님입니다.


그 말에 엘리가 혀를 찼다.


수면에서 갓 깨어난 여자는 한구석에 서서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감각을 익히려고 애썼다. 100여 년을 육신 없이 정신만으로 산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에밀이 문득 떠오른 기억을 들고 그 여자에게 갔다.


- 혹시…

- 네?

- 혹시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지 않으신가요?

- 언니가 있었어요. 이제는 없겠지만.


그녀가 슬픈 음성으로 회상했다.


- 언니는 맞고 있는 나를 감싸며 대신 매를 맞았어요. 온몸에 멍이 들고 피가 튀어도 절대 물러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데려갔어요. 어디로 갔는지 왜 데려갔는지도 모르게… 헤어지고 말았어요.

- 어쩌면 언니를 아직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언니가 맞다면요. 언니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그녀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며 이름을 기억해냈다.


- 언니는… 언니 이름은 주희. 주희예요.

- 주희 아이렌.

- 당신이 어떻게 알죠? 아이렌을?

- 제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살아있어요.


주린이 에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 당신은 누구죠?

- 저는 에밀이라고 해요. 제 아버지는 마르코 아이렌.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할머니의 성을 부여했어요. 아이렌은 흔한 성이 아니라서.


언니가 살아있고 눈앞의 남자가 손자라는 사실에 주린의 마음이 북받쳤다. 멈추었던 시간을 이제야 보상받을까. 주린이 두 팔을 벌려 에밀을 안았다. 에밀도 주린을 꼭 안아주었다. 엘리가 지우와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때 기주가 주린과 에밀에게 다가와 두 사람을 축하했다.


- 정말 잘 됐다. 주린, 에밀.

- 이제 이룬님만 깨어나면….


에밀이 이룬의 캡슐 쪽을 보며 말을 줄였다. 기주가 이룬에게 다가가 말했다.


- 이룬 여기 이룬의 아이가 왔어.


기주가 이룬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 말했다.


- 이룬. 어서 일어나. 잠은 깨어있는 시간을 위한 거야.


기주가 이룬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엘리나 에밀, 주린에게만 감동을 주는 모습은 아니었다. 지우 역시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렇게 애절한 느낌일까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지우가 기주의 모습을 보며 아련한 표정을 짓자 엘리가 다가가 지우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 어서 가봐. 정말 당신 엄마와 아빠가 저분들이 맞아요. 100년 대선배인 내가 보증한다니까?


엘리가 미는 바람에 살짝 한 걸음 내딛게 된 지우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기주의 뒤에 서게 되었다.


- 엄마야. 처음 보지?


지우가 뒤에 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주가 말했다. 지우는 엄마라는 말에 한 걸음 더 캡슐로 다가갔다. 정말 엄마일까.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 지우의 삶에서 엄마는 그저 다른 누군가였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분은 왜 깨어나지 않고 이렇게 있나요?


이룬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지우가 입을 열었다.


- 어떤 사고가 있었고, 그 일로 나는 먼 우주로 떠났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엄마가 나를 따라왔다. 그 과정에서 너를 낳고 휴머노이드로 인스톨 되었다고 들었다. 이제 100년만인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 말에 지우가 다시 한번 이룬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엄마라고 작은 소리로 불러보았다. 워낙 고요했던 콘트롤 데크에서 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부른 거지만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그때,


- 스크린을 봐요!


엘리가 모두의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이룬의 바이탈이 들썩이고 있었다. 맥박이 오르고 혈관의 산소포화도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 지우가 왔어. 이룬.


기주의 지우라는 말에 이룬이 천천히 눈을 떴다.


- 깨어났어…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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