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카르밀라> 관람 후기
뮤지컬 < 카르밀라 >는 창작 뮤지컬 중 하나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뱀파이어 '카르밀라'와 순수하고 맑은 성품의 소유자 인간 '로라'의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글은 뮤지컬 전반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에 관하여.
뮤지컬 < 카르밀라 >의 주된 이야기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다. 지금껏 알고 있는 뱀파이어는 영원불멸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나 인간의 모습과는 다를 바 없는 정도였는데 이들의 사랑이야기라. 그래서, 궁금했다. 특히, 다른 종족 관계에 놓인 소녀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갈지가 궁금했다.
작품의 내용과 주제가 '사랑'이었던 만큼 인물들 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전체적인 사랑 구도를 보자면, 카르밀라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로라의 관계와 닉과의 관계이다. 어찌보면, 그들 간의 삼각관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이들 간의 사랑의 방식은 성격이 다르다. 두 사랑 모두 영원한 사랑 즉, 영원성을 기반에 둔 사랑이었지만 한 사랑은 사랑의 방향성이 어긋나 결국 영원하지 않은 사랑으로 남았고, 다른 한 사랑은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전자는 카르밀라와 닉과의 사랑이야기이며, 후자는 카르밀라와 로라의 사랑이야기이다.
먼저, 카르밀라와 닉의 사랑은 양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적이다. 특히, 닉의 사랑방식은 집착적인 매니악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 방식을 결과적으로 비극을 부른다. 사실 둘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500년 간 뱀파이어로 살아온 닉과 닉을 따라 150년 간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온 카르밀라. 어쩌면, 이 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긋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둘의 시작이 어떻게 전개되어 지금에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극에서도 정확히는 보여주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랑의 기간과 그 마음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카르밀라는 이미 뱀파이어로서의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죽음 만을 기다리고 있고, 사랑은 커녕 무기력한 존재다. 카르밀라는 닉을 따라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그 마음은 150년 정도였다. 이는, 뱀파이어의 영원불멸한 삶에서 볼 때는 짧은 기간일 것이다. 그들도 영원한 사랑을 삶을 약속하며 시작했을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미 어긋나버렸다. 그럼에도, 닉은 카르밀라의 마음과는 달리 애정하고 있고 이는 집착 내지 소유욕 적인 사랑으로 이어진다. 닉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지내왔던 카르밀라가 이제는 자신을 떠나 10년 전에 잠시 만났다 다시 재회한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다 사랑의 방식마저 틀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닉은 카르밀라와 로라와의 관계를 알고 카르밀라를 겁박하고 로라를 뱀파이어 세계로 끌어들이려고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죽이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닉의 행동은 하면 할수록 오히려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야 만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로라를 지키고자 뱀파이어의 욕망을 억누른 채 살아온 카르밀라에 대한 마음은 이미 로라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방향이 다른 카르밀라의 마음을 닉은 돌릴 수 없었고 극단으로까지 가서 카르밀라를 대신해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럼에도 어긋난 사랑은 붙인다고 붙여지는 것이 아니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편, 카르밀라와 닉의 사랑은 양방향적이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적이며 숭고한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 방식은 사랑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강한 희생정신과 헌신을 요구하는 아가페적 사랑이 떠오르게 한다. 특히, 카르밀라는 로라를 지키기 위해 닉에게 원하는 것을 다해주겠다며 종속적인 관계도 마다 않을 정도로 희생적인 장면이 그러했다. 로라 또한 극 후반에서는 죽어가는 카르밀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주거나 그토록 피하려했던 뱀파이어가 되는 길을 택하는 점 또한 그랬다.
죽음을 원했던 카르밀라가 다시 뱀파이어로 살아가고,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피해오며 살았던 로라는 결국 뱀파이어가 된다.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한다. 이들은 사랑을 택했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것이다. 극 중 뮤지컬 넘버 '맹세해'를 부르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은 보라색 꽃 히아신스 앞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 있다. 히아신스 꽃 중 보라색의 꽃말의 의미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미 극 중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할 것임으로 하나의 증표로서 보여줬다. 그리고, 이 복선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둘이 손을 잡고 미래를 약속하는 모습에서 확실하게 설명이 된다.
한편, 이 두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영원성으로 시작되었을 혹은 시작되었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큰 덩어리처럼 관람객에게 던져지는 서사의 스토리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담지 못해 아쉬움도 남았기도 했다. 또한, 함께 뱀파이어가 되는 빠른 전개 장면은 결국에는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처럼 느껴졌기도 해서 다소 신파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사랑 만으로 설명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로라가 카르밀라를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주는 장면에서 인간의 삶을 포기하고 영원불멸한 뱀파이어의 삶을 선택하는 것에 의문점이 들기도 했다. 로라는 그동안 뱀파이어로부터 피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해왔던 점과 자신의 아버지마저 뱀파이어로부터 살해 당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뱀파이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카르밀라가 닉을 따라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결국 그 삶에 지쳐버린 것처럼 로라 또한 언젠가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영원을 약속했지만 카르밀라와 닉의 관계와 같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할 지도 모를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소원해져서 또 다른 사랑에 시선을 돌릴지도 혹은 다시 무기력한 상황으로 돌아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닉과의 관계성과는 다를 수 있으니 로라와의 사랑에서는 진정으로 영원한 사랑을 하며 살아갈 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말 같은 부분에서, 카르밀라와 로라가 사랑하지만 함께 하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며 자신의 삶에서 원하던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웃음 지으며 마무리 되는 결말 또한 좋지만 항상 좋은 결말이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보면 납득되지 않을 지점은 없는 것 같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이 마지막 부분에서 함께 손을 잡고 미래를 약속하는 장면을 연출한 이유에는 영원한 사랑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담고자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후의 모습이 어떻더라도 지금으로서는 현재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에 충실한 카르밀라와 로라가 있다. 이들의 사랑은 모든 악조건을 무너뜨리게 할 만큼 (현재로서는) 강력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흔히 뱀파이어 소재라고 하면 영원불멸한 삶 즉, 영원한 생명에 초점을 두어 전개되는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뱀파이어 소재는 영원한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영원한 사랑. 이제 카르밀라는 닉과의 사랑을 떠나 다시 로라와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고 뱀파이어의 삶을 이어간다. 정말 꽃말처럼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또 다시 닉과의 사랑처럼 반복될 일이 되지 않을까 등 오가는 여러 생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들의 약속에 의미를 두어보려 한다. 뮤지컬 < 카르밀라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