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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13. 2024

남자친구 없는 30살의 난자채취는...

30대 여자 연애 고백사 3

“OOO님, 들어오세요.”


손을 맞잡은 부부를 뒤로 하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하게 상담실 앞까지 걸어갔으나...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의사선생님은 언제나 그렇듯 그 자리에 앉아 안경을 닦고 계셨다.

“오늘부터 바로 주사 들어갈게요. 매일 4시에 주사 꼭 맞고 3일 뒤에 어떻게 되가는지 한 번 보고 또 처방내려줄게요. 호르몬제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반응이 살짝 느릴수도 있어요.”

3일치 주사 비용이 30만원에 육박했다. 카드를 리더기에 꽂고 결제가 되길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돈을 따지게됐다.

‘점심 한끼 밥 값 아끼겠다고 부지런히 집 가서 먹었는데 병원에서는 그냥 돈이 막 날라가는구나.’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젊은 난자를 저장해놓는데 가성비를 따질 일이 아니라고.     


집에 도착해 호르몬제가 든 주사바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주사를 스스로 내 배에 놔야 한다는 것 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핑크색으로 예쁘게 디자인된 플라스틱으로 용액을 감싸놓았다 할지라도 바늘은 바늘이다. 채혈할 때도 내 팔에 들어가는 주사바늘을 꿋꿋하게 쳐다보고 있는 강심장이긴 하지만 나 스스로 나를 주사놓는 다는 건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스스로 내 몸에 뾰족한 무언가를 찌른다는 느낌이 꼭 나를 해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집에 몇 시에 와?”

“6시 넘어서 나갈건데.”

“흠... 일단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주사를 집어들었다.

‘인생은 독고다이!’ 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바늘 뚜껑을 열었다. 주사기 끝을 살짝 누르자 바늘 끝에 용액이 구슬처럼 맺혔다. 아랫뱃살을 두툼하게 꼬집어 바늘을 살짝 갖다댄 뒤 눌렀다. 피부는 그 정도의 힘으로는 뚫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좀 더 과감하게 가야지. 그렇게 해서 뚫릴 정도면 이미 내 몸은 다른 일로 피투성이였을 거야.’

숨을 깊게 한 번 쉬고 바늘을 좀 더 멀리 들었다가 조금 더 힘을 줘서 쿡 찔렀다. 바늘은 드디어 표피를 뚫고 피부 밑 지방까지 들어갔고, 주사기를 눌러 용액을 집어넣었다. 10초가 지났을까. 내겐 마치 1초가 1분처럼 예민하게 흘러갔다. 주사기를 끝까지 누른 다음 서서히 뺐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지방에 호르몬이 잘 들어갔나보다.


그런데 내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주사 한 번 놓고는 매일 걸어 다니는 방을 조심히 걸어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내 손은 배를 가리고 있었다. 덜렁쟁이 천방지축 추민지가 ‘조심’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게 모성본능이라는 건가?’


남들이 들으며 오버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마치 애기를 키우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사로잡혔다. 그냥 난포가 생성되어갈 뿐인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내가 너무 웃겨 죽겠다. 다음 날도 나는 4시가 되자 냉장고에서 주사를 꺼내 적막한 공간에서 내 배에 주사를 놓았다. 이번에는 주사를 빼니 피가 찔끔 나왔다. 첫 날 잘 놨다고 두 번째 날에는 벌써 안일했나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아랫배에 멍이 들어있었다. 피가 안쪽에서 고인 듯 했다.


셋째날 쯤 되니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배에서 무언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몸도 좀 더 묵직해지는 듯 했고, 자꾸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엄마는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단백질을 먹어야 잘 자라지. 마트가자.”

엄마는 마트에 가자마자 소고기 파는 코너로 직행했다. 두툼한 소고기팩을 들고는 거침없이 카트에 집어넣었다.


“공주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경상도에서는 딸을 공주라고 부른다. 그 말에 내 마음이 약해진다.

“엄마 나 과일! 체리! 그리고 청포도도.”

평소라면 잘 안 사줄 과일들도 엄마는 가격 따지지 않고 카트에 채워넣었다. 그렇게 이유없이 10만원치 기분좋게 쇼핑을 마친 우리는 차에 음식들을 실었다.


“아 목말라.”

집에 도착한 나는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려 하자 엄마가 냉장고 문을 탁 닫았다.

“따듯한 물 마셔야지.”

“엄마... 여름이야.”

“그래도 안 돼.”     

엄마는 평소에 손주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고 했다. 다시 아기 키우는 고생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엄마가 더 주책이었다.


“엄마, 그냥 난포야. 애 들어선 줄 알겠어.”

“난포가 그 시작이니까 그것부터 잘 키워놔야지.”

“엄마, 나도 사유리처럼 결혼하고 싶은 남자 없으면 혼자 애 낳아서 키울까?”

“남편 없으면 열심히 우리 둘이서 키우면 되지.”

엄마의 말이 참 든든했다.


다음 날, 병원을 갔다. 난포가 몇 개나 자라고 있는지 초음파를 통해 보는 날이었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댔다. 의사 선생님은 유심히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2개 생겼네요.”


2개 라니... 누구 코에 붙이나... 내 몸이 소고기값을 아직 못했다. 처음에는 10개정도는 뽑혀야 가능성있다고 말하던 의사선생님이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2개도... 귀한 거죠.”

그래. 첫 술에 배부른 게 어딨겠나. 싶다가도 실망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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