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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Nov 04. 2024

30대가 된 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30대 여자 연애 고백사 5

5년 전 쯤, 상해에서 일할 당시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외모도 아니었고, 어딘가 모르게 안정되어 보이지 않고, 매일 체육복을 입고 다녔지만 한 편으로는 자상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듯 하다. 같은 회사라 매일 볼 수 있었지만 부서는 달랐기에 나는 어떻게든 그와 하루에 한 번은 마주치도록 동선을 짰다. 화장실 갈 때면 그가 부서에서 나올까 싶어 그 주위를 항상 지나쳤다. 그리고 직접 color room에 찾아가 말을 걸고 놀기도 했다. 내 부서의 실장님은 내가 한동안 자리에서 사라지는 걸 눈치채셨을텐데 한 번도 그에 대해 말씀은 안하셨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먼저 누군갈 좋아해본 적이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호감 표시를 숨길 줄도 몰랐다.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며 다가가야 할 줄 몰라 그를 안지 6개월이 되던 날, 다 같이 있는 술자리에서 홧김에 고백해버렸다.


“대리님, 저 안 좋아해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대리님은 당황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슬찍보며 말했다.


“민지씨 저 좋아해요?”

“네.”

그리고 또 정적. 회사 사람들은 눈치껏 그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호감도 없어요?”

“어... 근데 우리 사이에 뭐 없었잖아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 혼자 착각이었구나. 그런데 집 가는 길에 그는 나를 데려다주며 말했다.

“사실 호감은 있지.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나?”


그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호감있을 때 하는 행동은 모조리 하면서 사귀자는 말을 안 한다는 건 그냥 여운만 남기고 싶어하는 것 뿐이라고. 진짜 좋았다면 상해와 한국은 비행으로 2시간 남짓밖에 안 하니까 그렇게 만나자고 했겠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짝사랑의 법칙을 처음 몸으로 느꼈다. 그래도 한 가지 알게 된 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렇게 적극적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나는 매일 자기 전에 누워서 유튜브를 켜서 타로 영상 썸네일을 훑는다. ‘지금 내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 언제쯤 연락이 올까’ 등의 문구들이 나의 궁금증을 마구 자극시킨다. 영상을 몇 개나 틀어 내 상황과 맞는지 아닌지 반복하며 카드에 내 마음과 미래를 의지한다. 그러다 다시 유튜브 영상을 다른 알고리즘을 태우지만 이내 또 연애영상으로 돌아온다.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안 오는 이유’, ‘호감있는 남자가 하는 행동’.


그렇게 2주 동안이나 상대의 마음을 분석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그 사람의 행동을 혼자 추측하고, 상상하고, 장및빛 미래를 그렸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혼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러다 문득 내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유튜브로 찾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수동적으로 그 사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4년 전의 나는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워 상대에게 티 한 번 못 내보고 나 혼자 끙끙대는 걸까. 나이가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내 지금의 상황이 이렇게 만든걸까. 상대가 관심이 없어 보여서 내가 더 초조한 걸까.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로 출근해 수업을 시작할 때였다. 쉬는 시간에 여학생과 잘생긴 남학생 둘이서 꽁냥대고 있는 것이었다. 느낌이 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학생들에게 물었다.

“쟤들 사겨?”

“네. 교수님 이제 아셨어요?”

“아니, 언제부터?”

“학기 초에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엄청 호감 드러냈어요. 고백도 여자가 했는걸요.”

잘 생기고, 예의도 너무 발라서 평소에 눈 여겨 보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런 아이를 가만 둘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용기있는 여자가 미남을 얻는다는 걸 내 눈으로 본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에서 회사 다닐 적, 같은 또래의 여자가 회사에 입사를 했다. 신입은 아니었고, 2년 정도의 경력이 있는 상태였다. 그 친구는 2년 더 일했다는 부심없이 같은 나이라는 것 하나로 나와 동기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회식을 했는데 그 친구는 같은 부서의 대리님에게 몸이 좋다는 이유로 한없이 옆에서 치근댔다. 그런데 이거 보소. 대리님이 기분 좋아 보인다.

“아... 이렇게 너무 들이대는 거 별로 안 좋아 하는데...”

그런데 그가 웃고 있다.


일주일이 채 안 되 둘은 사귀기로 했고, 2년 가까이를 만난다. 21살 여자학생을 보니 그 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 인생 뭐 있어. 나중에 후회할 바엔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되지. 그 날 나는 타로 영상을 드디어 끊고 실행에 옮겼다.


지금 보낼까? 한 시간 뒤에 하는 게 나으려나?


문자 하나 보내는 데도 휴대폰을 잡고 몇 시간을 고민 중이다. I의 플러팅은 이렇게나 고민이 길다.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바로 전화가 울렸다. 카톡 보이스톡으로. 이때 느꼈다. 내 번호조차 없는 사람이다.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일 관련 핑계 삼아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말했다.

“언제 커피 한 잔 해요.”

그가 말했다.

“에이. 커피 보단 술이죠. 그 때 막창 같이 먹었던 분이랑 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죠 뭐.”

난 알았다. 커피고 자시고 술이고 자시고 이 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다. 30대의 호감은 불도저 같지 않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고이 접어 가슴 한 켠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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