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사는 나비는 꽃이 머금은 비명을 먹고 자라지
이 흔하고 어리석은 진부함을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아아. 지겨워.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턱을 괴고 중얼거린다. 너는 분명히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될 거다, 소중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므로. 아아. 지겨워. 나는 그 말도 이제는 지겨워져 버렸어. 나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노력을 해 보았으나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봐. 변하지 않아. 고쳐 쓸 수 없어. 나 같은 인간이 한두명은 아닐 거야. 나는 특별히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삶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신은 나 같은 인간의 삶을 거두어서 보다 오래 살아 남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걸까. 아아. 나는 가끔 신음한다. 고통스러워, 끝나지 않을 이 진부하고 지루한 시간이 지겨워서 나는 고통스러워. 오랫동안 느리게 죽어가는 병을 앓는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나는 결국 내 생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지옥나비
지옥에 피는 꽃은 오색으로 빛나고 나비는 꿀이 아니라 비명을 먹고 자란다. 지옥에 피는 꽃은 꿀 대신 비명을 머금고 있거든. 죽어가는 죄인들의, 영원히 죽어가고만 있는 죄인들의 비명을 머금은 꽃잎은 피를 머금은 듯 붉었다가 썩어가는 듯 검다가 아득하게 희었다가. 지옥나비는 비명을 먹고 자란다. 너의 악몽에 찾아가지. 네 머릿속에 알을 깐다. 지옥나비 애벌레는 네 악몽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면서 바스락 바스락 자라난단다.
괴담은 시작도 없이 끝나버리고.
네 머릿속에 나비가 있구나. 곧 뇌를 먹어 치워 버릴 거야. 그거 참 잘 된 일이에요. 나는 기꺼이 웃는다. 이 가치 없는 삶에서 나는 죽는다면 나무가 되고 싶어. 나무의 뿌리에서 무럭무럭 먹히고 싶어. 자연은 인간을 멸종시킬 거라고 한다. 한때 이 곳을 지배했던 생물들을 그렇게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너무 길고 고통스럽지만 않으면 좋겠어. 우리는 조금 더 일찍 덜 아프게 죽고 싶을 뿐이야. 한 데 모여 약을 마시면서 우리는 속삭인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대. 지옥에 가서 나비를 보면 알려주자. 지옥나비를 쫓아가면 벗어날 수 있을까? 환상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끝과 죽음과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우리 머릿속에는 애벌레가 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악몽을 먹고 자라나는 거야. 우리는 끝없이 악몽을 꾸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벌레가 결국 꿈틀거리면서 우리의 두개골을 찢고 태어나……. 나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랑, 팔랑. 날아가면서… 인분을 흩뿌리는데 그게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는 다시 끝없는 악몽을 꾼다는 거야…….
내 악몽에 그런 식으로라도 이유를 만들고 싶었지.
하나쯤 이유를 만들어 붙여 줘. 그럼 나는 억울하지 않으니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하잖아. 나의 병명을 밝혀 줘. 나의 이름을 알려 줘. 그럼 나는 슬프지 않을 거야. 지옥에는 나비가 산다. 지옥에 피는 꽃은 오색으로 빛나지. 꽃이 머금은 비명을 먹고 자라는 나비는 지옥을 팔랑, 팔랑 떠돌아 다니면서 죄인들의 머리 위에 알을 낳고… 그 알이 악몽을 먹고 자란다는 거야. 이 세상은 지옥이니까, 이 삶은 지옥이니까 나비가 떠돌아 다니고 있다. 나비의 날개는 인분을 흩뿌리고 우리는 그래서 악몽을 꾼다는 거야. 솔깃하지?
오늘의 악몽도 맑음입니다.
어김없이 식은땀으로 젖어 꿈에서 깨어납니다. 아, 눈을 뜨면 목을 죄어 오는 악몽. 나는 그것에 숨이 막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날마다 살이 찌고 있어요. 자면서 숨을 쉬지 않으면 나오는 호르몬이 나를 살찌우고 있대요. 이렇게 살이 쪄서 나는 어느 괴물에게 먹히게 되는 걸까요? 아직 바깥은 조용합니다. 새벽입니다. 나는 일어나고 싶지 않지만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 다시 잠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꿈이 덕지덕지 묻은 이불을 떨쳐내고 나는 바깥으로 빠져나옵니다. 너무 조용한 집 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지만 무엇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서 억지로 손을 들어 핸드폰을 집습니다. 배가 고플 때 냉장고를 뒤지는 버릇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고 있다면 텅 비어 있는 속을 뒤적거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끝없이 나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무언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라도 손에 걸리기를 바라면서 나는 뒤적, 뒤적.
이 비어 있는 곳에서 무언가 소리가 나는 것은 필시 아무것이라도 있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뒤적. 뒤적.
나비 더듬이라도 좋으니까 손끝에 뭐라도 닿았으면 좋겠다. 만져지는 건 말캉한 어둠입니다. 나는 항상 어둠이 말랑하다고 생각해 왔지. 물컹물컹해서 닿으면 푸욱 잠겨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물과는 다른 농도를 가지고 있는 어둠을 아십니까? 검은 물은 그래서 더욱 푹신해 보이고. 나는 검은 물을 바라보면 들어가 버리고 싶다는 말을 믿습니다. 찰랑이는 그 속으로 몸을 던져버리고 싶었어. 악몽 속에서 나는 가끔 물 속에 잠겨 들어갑니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목을 내가 조르고 있는 꼴이야. 약을 먹으면 꿈도 없이 잠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자꾸 잃어가는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밤을 보내고 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몽을 꾸고 싶지는 않아요. 낮을 주고 밤을 잃어버리거나, 밤을 주고 낮을 잃어버리거나. 나의 낮은 아직도 꿈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자꾸만 잃어버리기만 하는 삶입니다.
자꾸 잃어버리고만 있습니다.
잃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애벌레가 다 먹어치워서 그래.
베어먹은 자국만 남아 있는 귀여운 잎사귀들. 내 머릿속에도 같은 자국이 나 있겠거니. 다 먹혀서 그래. 야금야금 베어먹혀서 그래. 무언가 먹어치우는 것이 내 머릿속에 살고 있어서 나는 알이 까여진 숙주라서. 무언가 나를 자꾸 먹어치우고 있어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있어서.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텅 빈 껍질만 남도록 모든 것을 내어 줄 생각입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아. 지옥에 피는 꽃을 한아름 꺾어 방에 흩뿌리고 싶다. 나비들이 찾아와 비명을 빨아먹도록. 그래서 옆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옆집이 내 비명을 듣고 찾아와서 현관을 두드리지 않도록. 이봐요!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소리치지 않도록. 흐느끼는 울음을 삼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내 방에 찾아와 주세요. 내 머리를 먹이로 줄게. 머리에서 꽃이 피어나면 좋겠다. 지옥에서 피는 꽃이 왜 내 머리에는 피지 않을까. 지옥보다도 더 끔찍한 곳이 내 머리란 말인가.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