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언니의 소설을 읽는다

죽은 언니는 곧잘 글을 썼다.

by 민트박하






죽은 언니는 소설을 썼다.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두꺼운 노트를 발견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쓴 글씨들로 가득했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이 섞여 있었고 이야기는 두서없이 흘렀다. 페이지는 낡았다. 노트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에 어떤 노트가 가장 먼저 쓰여졌고 어떤 노트가 가장 나중에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는 흐르고 있었다. 죽은 언니의 글이었다. 낡은 책상, 칼로 파내어 희게 새겨진 죽고 싶어, 지워지지 않고. 어릴 적 받은 상장들. 다독상, 책을 많이 읽어 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수여합니다. 부질없어. 언니는 죽었다. 남겨진 것들은 의미없었다. 추억은 흐릿했다.


언니와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은 십년이 넘었다. 얼굴을 봐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언니의 속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죽고 싶다고. 책상 위에 새겼던 글씨는 초등학생의 것이다.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 글씨를 새겼을까.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지나치게 어릴 때의 일이다. 나는 그 글씨를 보고 이게 뭐야. 라고 말했다. 언니는 지금도 죽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언니는 진짜로 죽어버렸다. 그건 언니의 삶에서 유일한 성공이다.


언니의 소설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언니가 무엇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알겠다. 좋아하는 만화의 세계관 속에 낯선 인물이 한 명 끼어 있었다. 신비롭고, 말수가 적고, 조용한 인물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알리지 못한 슬픔을 갖고 있다. 그것은 캐릭터의 우울로 드러난다. 다른 인물들은 우울한 그 낯선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위로해준다. 따스한 말을 건네면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언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니는 이 세계에서 달아나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지. 그리고 살고 싶었을 것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설은 대부분 비슷했다. 어떤 우울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의 주위에는 밝고 찬란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언니는 태생이 우울한 사람이었다. 밝고 찬란한 인물은 완전할 수가 없었다. 언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사람을 상상할 수 없으니까. 그런 사람을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언니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조금씩 우울했다.


눈물 젖은 입술로 중얼거리는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한다. 서로 부둥켜 안고 그랬구나. 이제 다 괜찮아. 라고 말한다. 언니는 그런 사람들만 그려낼 수 있었다. 언니가 꿈꿀 수 있는 찬란함은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에게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언니에게 괜찮아,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게 언니가 바라는 전부였다. 언니의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의 우울은 색이 같다. 푸르고, 깊은. 어둡고, 따뜻한. 그 속에서 언니는 잠긴 채로 중얼거린다.


나는 지금도 죽고 싶어.


낡은 노트들을 뒤적인다. 언니의 소설을 읽는다. 언니는 이것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도 미완성의 세계다. 완성을 본 글은 없었다. 모든 것이 미완성으로 끝났다. 끝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이라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미약하게나마 흘러간다.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언니는 그래서 삶을 끝내버렸다. 미약하게 흘러가는 그 삶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삶에서 버틸 수가 없어서. 아니, 모르겠다. 언니는 왜 죽었을까.


아무도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원인을 말할 수 없다.


언니의 책상 위에는 펜이 잔뜩 꽂혀 있는 연필꽂이와 먼지 쌓인 스탠드, 책받침대가 놓여 있다. 노트북은 켜지지 않는다. 오래 전에 전원이 나갔다. 이 속에도 언니가 쓴 글이 가득할 것이다. 그 속에서도 언니는 계속 달아나고, 위로받고, 달아나고, 위로받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자꾸만 자신을 복제했을 것이다. 언니는 나뉘어지고, 나뉘어지고, 나뉘어진다.


조각난 언니.


언니는 우울증 약을 먹었다.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었다. 어느 날 연극을 보고 온 언니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서랍의 깊은 곳에서 나는 그 편지를 꺼내 읽을 수 있었다. 언니는 연극의 제작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 극을 만든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극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극에서 한 인물은 약물로 자살을 시도한다. 언니는 그 연극을 보고 온 날 이 주치의 약을 한꺼번에 먹었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언니는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니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약을 먹었어요. 당신의 극을 보고 나는 약을 먹었어요. 연예인이 자살을 하면 자살률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걸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단다. 언니의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나는 당신의 극을 보고 약을 먹었습니다. 당신의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이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나는 그 방법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마침 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것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당신 탓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좀 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까. 언니는 거짓말을 한다. 언니는 위로받고 싶은 거였지? 그 사람에게 걱정받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 거지? 그리고 걱정받고 싶은 자기 자신이 싫어져서, 동정받고 싶어하는 자기가 싫어져서 편지를 보내지 않은 거지? 물어볼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없다. 언니의 편지는 끝맺지 못했다. 나는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디에도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언니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평생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다 간 언니.


약을 먹는 순간 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괜찮아, 라고 말하고 있었을까. 그 때에도. 언니는 평생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괜찮아, 라는 말이 입버릇이었다. 무엇이 괜찮은지 하나도 모르면서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나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언니와 나는 대화를 십 년 동안 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를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 줌으로 다 담기 힘든 알약들을 맥주와 함께 한 입. 두 입. 세 입. 그렇게 나누어 먹는 동안 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언니는 약물과 알코올을 함께 섭취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니는 약물과 알코올을 함께 먹었다. 위험해지고 싶어서. 위험에 빠지고 싶어서. 죽고 싶어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러나 허무하게 죽는다. 너무나 허무한 삶이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그저 존재하다가 끝난 삶. 언니는 그런 삶을 살다 갔다. 남아 있는 것은 유리 조각 같은 파편 뿐. 쥐고 있으면 손바닥을 찔러서 결국 놓아 버려야 하는 그런 조각 뿐.


괜찮아?


괜찮을 건 뭐였고 괜찮지 않을 건 뭐였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언니가 두고 간 노트를 펼쳐 뒤적이면 또 한 명이 울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그를 위로해 주고 있다. 우리는 순간에서 영원할 수는 없는 걸까. 누군가에게서 위로받는 그 순간에 영원히 멈춰 살 수는 없는 걸까. 그 때의 안정, 그 때의 기쁨, 그 때의 평화가 왜 평생 갈 수 없는 걸까. 왜 언니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을까. 붙잡아 줄 순간. 죽고 싶을 때, 놓아버리고 싶을 때, 다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래도, 라는 한 마디를 붙일 수가 없었을까. 왜 언니에게는 그래도, 가 없었을까. 언니의 낡은 노트는 이번에도 끝을 보지 못한다. 중간에 뚝 끊긴 이야기에서 언니는 단 한 번도 결말을 쓰지 못했다. 위로받고 나면, 그게 결말이니까. 위로받은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위로받는 것이 목적이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언니는 당신의 삶도 위로받은 순간 끝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동화처럼. 영원을 바랄 수는 없어. 우리는 살아있잖아. 인간이잖아. 소설이나 동화 속 인물이 아니잖아.


영원은 아니더라도 평생일 수는 없었을까.


왜 순간이더라도 전부가 될 수는 없었을까.


언니의 노트를 덮는다. 이제 언니는 없다. 글을 더 이어나갈 사람도, 지금까지 쓴 글을 지워 버릴 사람도 없다. 낡은 책상에 새겨져 있는 죽고 싶어, 에 대해 변명할 사람도 없다. 아무도 없다. 먼지가 굴러가는 좁은 방. 이 방 안에서 언니의 우주는 끝을 본다. 기어이 멸망을 본다. 이 방에서 시작했던 이야기는 이 방에서 끝난다. 여기. 그래서. 그랬습니다. 마침표를 찍는다. 십 년동안 제대로 대화해보지 않았던 언니를 이해할 방법은 없다. 언니의 유서도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문장 뿐이었다. 언니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제 와서 알게 된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존재하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도 힘든데. 우리는 그저 알겠다고 말할 뿐이지. 진짜로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방 한 가운데에 서서 문장을 중얼거린다.


나는 눈물에 잠겨 죽고 싶었습니다. 나는 백합 꽃 향기에 죽고 싶었습니다. 나는 물레에 찔려 죽고 싶었습니다. 인어가 나를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무엇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언제고 떨어질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있도록 번지점프를 연습했습니다. 그 까마득한 높이에서 허리에 줄을 매달고 나는 지금 머뭇거린다면, 죽을 때에도 머뭇거릴 거라고 생각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까마득히 추락하다가 튕겨져 올라가는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나에게 참 재미 없이 뛰어내린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죽을 때 소리를 지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비명을 지른다는 것은 거절의 의미입니다. 거절하고 거부한다는 의미로 우리는 소리 높여 울부짖습니다. 죽음은 결코 나에게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나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내가 떨어질 때는 이런 것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느라 나는 소리를 지르는 것을 잊었습니다. 침묵은 가혹하고 나는 언제나 이를 악물며 살아왔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우는 것이 나의 버릇입니다. 흐느낌 없이 나는 숨죽여 울었습니다.


언니의 문장은 지워지고 잊혀지고 사라질 것이다. 언니처럼.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는 쓴다. 대신해서. 이 문장은 존재합니다. 언니가 존재했던 것처럼. 살아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씁니다. 누군가의 삶을 옮겨 놓습니다. 그렇게 해서 존재를 추억합니다. 한 때 살아 있었던 사람.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새깁니다. 이 곳에 새겨 둔다면, 누군가 읽어준다면 최소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며. 변형되고, 잊혀지고, 뒤틀리고 왜곡되어도 찰나로 남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찰나가 영원이 되기를 바라면서 살잖아요. 나는 당신의 찰나라도 되고 싶습니다. 언니는 말한다. 언니는 쓴다. 언니는 글을 썼다. 위로받는 글을. 언니의 낡은 노트는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언니는 자기 복제의 글을 썼다. 위로받고 싶어서 끝없이 자신을 복제했다. 그 곳에서조차 언니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무도 대신 글을 써 줄 수 없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결국은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것. 그래서 문학은 읽을수록 외로워진다고, 결국 모든 문학은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어느 연극에 나왔던가.


죽은 언니의 소설을 읽는다. 아무도 끝낼 수 없는 글을, 이제는 누구도 끝낼 수 없는 글을. 끝없는 글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어서, 이해하고 싶어서.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알 수 없으니까 읽는다. 우리는 모두 순간을 영원으로 알고 살아가잖아요.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거창한 말로 위로받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살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 글에서 찾을 수는 없었을까. 언니의 글을 읽는다. 살고 싶었던 언니가 발버둥치던 흔적을 더듬는다. 이 글이 나를 붙잡아 주길 바랍니다. 문장을 어루만지며.


지워지지 않게 해 줘.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 이제 소용 없다 해도. 비록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모으려 애를 쓰고 있다 해도. 만들어 내요. 언니. 하나 만들어 가져요. 살아야 하는 이유. 살고 싶은 이유. 없으면 하나 지어요. 누군가 만들어 주길 기다리지 말아요. 언니의 낡은 노트 뒷면에 나는 쓴다. 언니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어딘가에라도 남을 거야. 어딘가에라도 써 두면.


죽은 언니의 노트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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