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별의 조각

이름도 없이 떨어지는 별빛이어라

by 민트박하






이 조각을 차마 놓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싹이 틀거야. 언젠가는 빛을 볼거야. 언젠가는 그럴 거야.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언젠가를 기다리는 언젠가. 내일을 기다리는 내일. 어제를 기다리는 어제. 목소리가 없으면 흐르지 않는 오늘. 오늘을 흘려보내면서 오늘을 버렸다. 모든 것을 잊기엔 지나치게 얼룩진 마음이야. 문질러도 문질러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깊은 나의 얼룩들. 얼룩덜룩한 마음을 몇 번이나 손 끝으로 문질렀을 때 빛의 조각이라도 닿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언젠가는 빛이 날거야. 언젠가는 울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그립지 않을 거야. 속삭이는 목소리는 주인을 잃어서 발성은 흩어지고 발음은 낡아빠진다. 닳고 닳은 그림자만 흐릿하게 죽어가는 밤. 너의 발자국을 쫓아 흐린 걸음을 옮겼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곳에 무엇이라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나의 흐림은 무엇으로 밝음이 될 수 있을까. 먹빛의 물을 받아 마시며 언젠가는 맑음이 올 거라고. 내가 그리워하는 이는 없는 이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사람만 그리워하면서 네가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믿음은 빛 바랜 그리움처럼 시간 따라 퇴색하고 퇴적되어 처음의 기억은 늙은 화석이라. 너는 알고 있었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

온 몸으로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아.


다가가면 멀어지던 사람아. 구석이라도 나의 것인 적 있었나. 나의 자리 그 곳에 있었던가. 가벼운 눈길 한 번으로 울렁이던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저 묻고 싶었지, 한 번도 답을 듣고 싶었던 적 없었지. 묻기만 하고 싶었다. 모두 묻어버렸어야 할 질문들을 끝끝내 물어버리고 나는 혼자 빙글빙글 초침을 돌린다.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게 해 준다면 어떤 순간은 영원히 달아나기만 해. 돌이킬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순간의 추억으로 살기엔 그 아무것도 아름답지 않아서 되새기는 모든 것이 후회다.


나는 슬픈 기억 사이만을 헤매이는 유령이어라.


이게 정말 언젠가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될까?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그랬었지, 하는 추억으로 남을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시간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 오기 전에 나는 죽어버리고 싶어지진 않을까? 너를 아름답게 추억하다 죽을 때까지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남기기 위해 나는 요절을 원해. 이게 정말 다 괜찮아진다고 믿어? 괜찮아지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괜찮다고 말해. 괜찮아.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겠어. 그런데, 괜찮을 건 또 뭐겠어. 나는 어쩌면 너를 위해 영원히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괜찮지 않은 걸 너는 신경이나 쓸까.


너를 더듬어 추억하다보면 모든 것이 무디어진다.


손마저. 무딘 손마디가 떨어져 나간다. 나는 손가락이 없는 뭉뚝하고 둥근 손바닥으로 너를 어루만진다. 손금이 닳아 없어지도록 만지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마침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침내 잊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너 없이 나의 시간을 그려나갈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럴 수 있을까. 그려나간 시간이 나의 것일까 정녕 나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울고 싶어서 슬픔을 뒤적이는 사람처럼 나는 항상 아프기 위해 가시에 혀를 내밀었다. 베인 자국을 오랫동안 핥았다. 구멍이 나면 보석을 꽂았다. 바늘 끝으로 꽃을 새겨 넣었다. 기억하기 위해서. 추억하기 위해서. 아프기 위해서. 모든 것은 울기 위해서로 귀결된다. 흘린 눈물이 모두 가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가치 있음을 허투루 흘려보냈는가. 그 모든 것이 돌아와 나를 담그길 바란다. 평생 동안 흘린 눈물 사이로 빠져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그 이상의 표현을 찾지 못해 나는 그저 중얼거린다.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죽어가는 밤이야. 흐려지는 눈이야.


밤눈이 밝은 울음아. 소리 따라 허공을 헤매는 별아.


네 이름을 묻는다면 너는 그저 죽은 별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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