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냄새

너는 우울하고 우울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by 민트박하







너에게서는 우울한 냄새가 났고 나는 그걸 맡고 있었다.


냄새는 사람마다 달랐다. 지문처럼. 고유한 식별이 가능했다. 나는 등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보지 않고 알 수 있었다. 너에게서는 우울의 향기가 났다. 우울한 사람들은 많았고 그들의 냄새는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 색을 그려낼 수는 없었지만 비슷하게 묘사해보자면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공기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해서 우울의 냄새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행복의 냄새가 어떻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봄볕 좋은 날 내놓은 솜이불과 같은 느낌이다. 진부하게도, 행복과 우울은 맑은 날과 흐린 날만큼 명백했다.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와 떠오르는 숨결 같았다. 나는 가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사람들의 냄새를 탐미했다. 각자의 고유한 숨결이 어우러진 냄새들은 가끔 향기로웠고, 웅장한 심포니를 이루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고약한 쓰레기장 같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항상 긴장한채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어떤 냄새가 날까. 어떤 향기가 나를 취하게 할까. 한 편의 영화와 같은 냄새를 맡을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그 강의실에서 나는 너의 냄새를 맡았다. 너는 우울의 향기를 갖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사람마다 다른 그 향기를 나는 몰래 훔쳐맡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냄새가 빼앗기는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호흡과 함께 그들의 냄새를 훔쳐 온다. 내 코 속에서 맴도는 공기가 입천장을 간지럽힐 때 즈음이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혹은 어떤 색채. 어떤 공간. 어떤 사물. 너의 우울은 깊고 깊은 바다였고.


그 시퍼렇고 어두운 곳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길을 잃은 인어처럼.


심연을 헤매고 있는 너를 발견했다.


너의 우울은 특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깊다거나, 특별히 심각하다거나. 특별히 병증으로 발병할 낌새를 보인다거나. 나는 어딘가에 가면 늪에 빠진 기분을 받았다. 우울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그들 특유의 공통점을 나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끈적한 우울과, 깊은 우울과, 질척한 우울과, 따가운 우울이 뒤섞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늪처럼 발목을 잡아 이끌어서 나는 그만 이끌려 따라갈 뻔 했다. 그들의 사이에 섞여 있으면 호흡에 짙은 수분이 함유될 것 같았다. 인어가 될 것 같았지. 그런 우울들과 비교했을 때 너의 우울은 특별히 깊거나, 끈적하거나, 뾰족하지 않았다. 뭉뚝하지도 않았다. 너는 그저 우울할 뿐이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우울을 얕게 감싸고 있는 향기였다.


달콤한 향수를 뿌리는구나.


그건 누구나 맡을 수 있는 향기였다. 손목에 뿌리거나, 귓바퀴 뒤에 찍어 바르거나. 혹은 옷의 끄트머리에 살살 흩뿌리거나 향수 젖은 손으로 어루만지거나. 누구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향기로운, 우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울의 냄새와는 동떨어진 향기를 맡으며 바닷속 한 가운데에서 맑은 햇살이 비치는 꽃밭을 발견한 기분이 되었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의외의 것과 마주친 기분을. 어항에서 토끼를 발견한다든지, 숲 속의 금붕어라든지.


너는 필사적으로 우울을 견뎌내려 하고 있었다. 그 향수를 뿌리는 의식을 거치고 외출을 함으로써 너의 우울을 덮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오직 세상에서 나만 눈치챌 수 있는, 심지어 너 자신도 모르고 있을 너의 비밀이었다. 나는 너의 우울을 맡았다. 너의 우울은 심연의 꽃밭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비일관적이었고 비일상적이었고 비현실적이었다. 너는 웃고 있지 않았고, 무언가 지친 얼굴로 칠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을 멍하니 바라보는 너의 옆얼굴을 몰래 훔쳐보았다. 냄새 맡는 것으로 충분히 너를 알 수 있었지만 향기는 숨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얼굴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너는 지루해 보였고, 지쳐 보였고, 그래서 나는 네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떠날 것 같아 불안했다. 조금 더 네 향기를 맡고 싶었다.


바다를 덮은 꽃의 향기를.


강의 시간은 수업은 뒷전이고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너는 수업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으로 너를 위한 전력을 다 하고 있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아침을 먹거나 혹은 먹지 않거나. 짐을 챙겨 오늘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현관을 나서는 것. 그 일상이 너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일지 나만 알 수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너 자신도 깨닫지 못할 일상이 주는 무게감. 그것이 우울의 힘이었다. 너는 바다를 떠받치고 있었다. 나는 그 바다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꽃 한 송이가 받치고 있는 우울의 바다를 나는 알 수 있었다. 냄새로. 너의 향기는 그랬다. 너의 우울은 그랬다. 나는 그 향수가, 네가 외출하기 직전 손목에 살포시 뿌리고 나오는 그 향수가 오늘을 이겨내기 위한 너의 우울을 견뎌내기 위한 안간힘 같아서 안쓰러웠고 안타까웠다.


너는 의외로 꼬박꼬박 출석을 잘 했다. 가끔 지각할 것처럼 아슬하게 도착했지만 한 번도 급해 보인 적이 없었다. 너는 터벅터벅 걸어서 바다의 물방울을 하나 하나 흩뿌리면서, 그렇게 향기를 뿌리면서 강의실로 향했을 것이다. 네가 지나간 길마다 둥글게 발자국 모양으로 물방울이 향기처럼 남았을 것이다. 강의가 끝나면 너는 느릿하게 짐을 챙겼다. 단정하게 필기한 노트를 접고, 펜을 필통에 넣고, 가방에 차곡차곡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조용히 강의실을 혼자 빠져나갔다. 이 강의 다음 무슨 강의를 들을지 궁금해서 너를 따라 나섰다. 너는 넓은 대학교 캠퍼스를 홀로 거닐었다. 사람들의 냄새.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수많은 향기들 중 빨간 실처럼 너의 향기가 나를 너에게로 이끌었다.


너는 뒷밟히는 줄 모르고 터벅터벅 걸었다. 머리에 우울의 바다를 이고.


캠퍼스에는 수많은 냄새들이 떠돌아다녔다. 까만 물방울 무늬. 파란 숨결. 노란 눈물. 보라색 눈동자. 연두색 팔꿈치. 주황색 입술. 하늘색 뺨. 하얀 줄무늬.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냄새들의 향연. 팔짱을 끼고 지나가는 저 사람들은 반짝이는 하얀 강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다를 떨고 있는 저 사람들은 먹빛 새들을 한움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향기가 뒤섞여 온갖 그림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을 다 묘사할 힘이 없다. 다만 너의 향기를 쫓아갈 뿐이다. 바다 위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을 쫓아서 나는 너를 따라간다. 너는 한들한들 휘적휘적 걷는다. 너의 향기는 뚝 뚝 떨어지는 한 움큼의 물방울 꽃잎. 자기들끼리 뭉쳤다가 스르르 사라진다. 그것을 쫓아 너를 따라가면 너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는 작은 빌라의 입구에 잠시 멈춰 서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스르르 들어갔다. 나는 그 입구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너의 향기가 사라질 때까지. 너의 물방울이 다 마를 때까지.


너는 덧씌운 꽃잎을 감싸쥐고 나타났다. 항상. 너의 우울 위로 얇은 꽃잎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 향수는 분명 어느 꽃에게서 훔쳐 온 것이겠지. 어디에 피어 있던 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바다와는 가깝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도 섞이지 않는 두 냄새가 미묘한 경계를 두고 아슬하게 겹쳐 있었다. 그건 정말 물방울을 감싸고 있는 꽃잎 같았다. 표면장력으로 깨어지지 않는 둥근 물방울 위에 겹쳐 얹은 꽃잎이 너의 우울이었다. 너는 아름답게 우울하구나. 강의실에서 너는 돋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이었지만 나는 네 향기가 참 좋았다. 매일 매주 매 달 그 수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향기를 그리워하면서. 꽃집에서 꽃다발을 한아름 사서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고 그 위에 꽃잎을 흩뿌려 보았지만 비슷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사람에게서만 나는 독특한 우울의 냄새, 나는 그것을 흉내낼 수 없었다. 향수 냄새는 어떻게든 구한다 쳐도. 너에게 향수의 브랜드를 묻고 싶었다. 그렇게 너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 싶었고 너와 눈을 마주하고 싶었고 너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너의 냄새. 너의 향기. 그것의 깊이가, 그것의 뿌리가, 그것의 씨앗이 궁금해졌다.


아름다운 냄새에 취해 버린 것처럼. 나는 네가 궁금해졌고, 네가 알고 싶어졌다. 너는 누구일까. 이름도 모르는 너를. 출석을 부르지 않는 수업이 처음으로 안타까웠다. 너는 수업 시간 동안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았다. 교수님에게도 너는 특별히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어쩐지 비밀스러운 기분에 취해 버린다. 너의 특별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 네가 특별한 향기를, 특별한 우울을, 특별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오직 나 뿐이라는 사실이. 네가 짊어진 그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웃었다.




그리고 너는 갑자기 향수를 뿌리지 않기 시작한다.




냄새는 얄팍한 것이라서 단 하루, 단 하루 거른 그것이 바로 미묘한 차이로 나타난다. 너의 바다 위에 피어 있던 꽃이 사라졌다. 너의 물방울을 감싸고 있던 꽃잎이 사라졌다. 너의 우울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던 꽃향수가 사라졌다. 네가 그 날, 강의실에 등장했을 때, 나는 너를 돌아보고 말았다. 무심결에. 익숙한 냄새가 익숙하지 않게 되었을 때 소름끼치는 그 느낌을 나만 알 수 있었다. 너의 냄새는 그저 깊고 푸른 바다의 우울이 되어 있었다. 그 우울함이 평범해지려 한다. 너는 너의 우울을 지탱하는 것을 멈추려 한다. 너는 견디는 것을 멈추려 한다.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보지 않고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았다. 너는 묘하게 지쳐 보였고, 나른해 보였고, 피곤해 보였다. 너의 옆모습을 훔쳐보기가 두려웠다. 내가 익숙히 알던 것이 순식간에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주 얇고 선명한 균열. 그것이 너에게 일어나 있었다.


그것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 붉음이라서 너무 슬퍼.


손목에 피어야 할 것은 그게 아닌데.


너의 손목에 피어야 하는 꽃은 그 색이 아닌데. 나는 문득 깊은 슬픔에 잠긴다. 네가 견디지 않기로 해서 너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린 바다. 그 바다에서 짠내가 난다. 너무 짜서, 쓰기까지 한 그 짜디 짠 바다가 너를 흠뻑 적셨다. 너는 우울하고, 깊게 우울하고, 쓰게 우울하다. 나는 쓰라린 냄새를 맡으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너는 아무 일 없이 수업을 듣고, 이 수업이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노트를 접고, 필통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겠지만.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들어가겠지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너의 물방울을 터뜨리겠지만. 그 날카로움에 꽃잎이 상해가는 것을 모르겠지만. 여린 꽃잎이 몇 겹으로 찢어지는 것을 나 혼자 알겠지만. 너는 절대로 알 수 없겠지만.


아슬한 균열이 무너지고 쏟아져내렸을 때, 너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겠지만. 너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너는 너무나 지쳐 있어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 수도 없고,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어서 너는 알 수 없고. 오직 나만이 너의 붕괴를, 만난다.


그러니까 나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묻는다.


무슨 향수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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